[가계부채 사상 첫 1200조 돌파]
정부는 시중은행의 가계부채 연체율이 1% 미만인 데다 상환능력이 양호한 고소득층(소득 4·5분위)의 담보대출 비중이 70%를 차지해 관리가 가능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빚의 총량이 워낙 빠르게 불어나고 있고 저소득층과 고령층,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부채는 언제든 국내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위협 요인이어서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국민 1인당 2342만 원 빚더미
부채 총액은 물론이고 분기 및 연간 기준 증가폭 모두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2년 이후 사상 최대치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 보험사 대부업체 등 금융권에서 빌린 돈과 결제하기 전 카드 사용 금액을 합친 것으로 실질적인 가계 빚을 보여준다.
가계 빚이 급속도로 불어난 것은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금융권의 저금리 기조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해 늘어난 가계 빚의 60%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주택담보대출은 작년 말 608조8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약 74조 원(13.8%)이 증가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실장은 “부동산 경기 부양책으로 건설투자가 늘어 지난해 경기회복세가 뒷받침됐지만 지금은 가계부채 급증으로 소비가 위축되는 부정적 효과가 더 커지고 있다”며 “정부가 부채의 질 개선과 더불어 총량 규제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자영업자 대출이 가장 취약한 고리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영업자 규모는 556만3000명으로 전년도보다 8만9000명이 줄었다. 11만8000명이 줄었던 2010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장사가 안 돼 문을 닫은 자영업자가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와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맞물리면서 50, 60대가 치킨집 등 대거 자영업에 뛰어들었지만 경기 침체로 자영업이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서 이들의 빚이 가계부채 리스크를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자영업자 대출규모는 239조3000억 원이다. 은행 외에 캐피털,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제2금융권 대출까지 합하면 규모는 두 배 이상 커진다. 한은에 따르면 제2금융권을 모두 포함한 자영업자 대출규모는 519조5000억 원(지난해 6월 말 기준)이다. 이 중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70%를 넘는 고위험 대출은 전체의 18.5%를 차지했다. 자영업자 대출이 금융시장의 잠재적인 위험요인으로 부상하는 이유다.
자영업자 대출의 상당 부분을 별다른 소득이 없는 고령자들이 안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말 자영업자 대출 중 50대 이상 고령자의 대출액 비중은 62.5%에 달했다. 은퇴 후 실질적인 소득은 줄고 지출은 늘어나는데 이자까지 갚아야 해 가계부담은 커지는 모양새다.
○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 나서야
가계부채 통계 발표에 맞춰 정부도 이날 별도의 대응 방향을 내놨다. 빚을 갚을 수 있도록 경제성장과 내수활성화를 통해 가계소득을 늘리고, 대출 관행도 분할상환 방식으로 정착시켜 금리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게 핵심이다.
늘어나는 가계 빚은 경기를 더욱 침체시키는 요인이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4년 말 기준 164.2%에 이른다. 1년 소득을 다 쏟아 부어도 빚을 갚지 못하는 셈이다. 대출 원리금을 갚느라 가계는 주머니를 닫고, 경기는 더욱 침체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임수 imsoo@donga.com /세종=신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