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2>음주단속 기준 0.03%로 “한두잔 쯤…” 불감증
○ 여성 운전자 음주사고도 대폭 늘어
19일 오후 10시 30분 서울 강동구 길동 네거리 인근. 편도 3차로의 2개 차로를 막고 경찰의 음주단속이 시작됐다. 유흥가인 이 지역은 밤늦은 시간에도 취객들이 붐비는 곳이다. 11시를 넘자 집에 가려는 차량 행렬이 줄을 이었고 음주운전 적발도 속출했다. 11시 30분부터 약 40분 사이에 적발된 음주운전자는 7명. 이 가운데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이하는 3명이었다.
운전자 김모 씨(31)도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 두어 잔만 마셨는데 걸렸다”고 말했지만 말투는 꼬여 있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29%로 나오자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다시 운전석으로 향했다. 경찰관이 겨우 설득해 대리운전을 부르게 했다. 이금환 강동경찰서 팀장은 “단속 기준을 낮추거나 아니면 기준에 미치지 않은 음주운전자를 벌점 등으로 제재할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운전자들이 술을 입을 대면 아예 운전을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음주운전 경각심이 최근 갈수록 둔감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는 통계에서도 확인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운전 사망자는 583명으로 전년보다 9명(1.5%) 줄어드는 데 그쳤다. 직전 2년 동안 10% 이상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정체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음주단속 기준을 0.03%로 낮출 경우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를 300명가량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비행기나 선박 운전자는 음주단속 기준이 0.03%다. 여성 운전자의 음주 사고를 막기 위해서도 단속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중 여성 음주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는 오히려 전년보다 10.3%나 늘어났다.
○ 단속기준 낮추자 사망자 4분의 1로 줄어
변화는 빠르게 나타났다. 2002년 음주운전 사망자는 1000명 아래로 내려갔고, 2009년부터는 연간 300명을 밑돌고 있다. 10년 만에 사망자 수를 4분의 1로 낮춘 것이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음주운전 사망자 비율은 6%대에 머물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지난해 한국의 음주운전 사망자(583명) 비율은 12.6%에 이른다. 최근에는 음주운전에 비교적 관대했던 나라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경우 50년 만에 0.08%인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낮추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단속 기준을 세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8%가 기준인 캐나다는 운전 경력이 2년 미만이거나 20세 미만 운전자(0.01%)는 술을 입에만 대도 운전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스페인(0.08%)과 뉴질랜드(0.05%)도 경력 2년 이하 운전자에 한해 단속 기준을 0.03%로 강화했다. 운전을 처음 시작하는 시기에 ‘음주운전은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정성택 neone@donga.com·박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