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이라 몽골 출신 다문화여성연합 대표
몽골 속담에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니, 옆에 있던 남편이 빙긋 웃으며 “한국에도 똑같은 속담이 있다”고 한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머지않았다는 의미이고,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하지 않는가. 곧 3월은 올 테고,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의 열세 번째 삼일절을 맞는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3월 1일은 몽골에선 독립과 함께 1921년 3월 1일 창립된 유일 정당인 인민혁명당의 기념일이었다. 독립에 연관된 기념일이라는 점에서는 유사점이 있다. 타국의 지배를 오래 경험하고 독립을 쟁취해냈기에 나는 한국 독립에 대해서도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다.
이에 더해 외부세력의 어떠한 압제에도 굴하지 않는 한국인의 독립성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것 같다. 그 오랜 시간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을 이끌어온 원동력은 한국인의 특성에 잠재돼 있던 힘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장소는 따뜻한 나라 필리핀이다. 며칠 전 가족들과 다녀온 현충원의 충혼당과 높이가 비슷할 정도로 큰 망고나무 아래에서 현지 학교의 필리핀 선생님과 이 나라 역사에 대해 오래 얘기를 나눴다. 이 나라 사람들도 오랫동안 식민 지배를 겪다가 독립을 이루어낸 사람들이다. 스페인은 수차례 원정 끝에 1571년 필리핀을 정복했다. 식민지의 이름도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따 필리피나스로 칭했다. 이후 필리핀은 1898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괌, 푸에르토리코와 함께 미국에 넘겨질 때까지 약 330년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그럼에도 필리핀은 스페인 지배 기간에 100여 차례의 민족 혁명을 일으키는 불굴의 의지를 보였으며 1946년 7월 4일 미국으로부터 정식 독립할 때까지 독립 열망을 굽히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 성장한 몽골은 옛 몽골제국이 명나라에 의해 실질적으로 멸망하고 1696년 청나라에 편입된 이후 200년 넘게 청나라에 예속됐다. 1912년에 1차 독립을 이루고, 1921년 러시아의 지원으로 다시 중국으로부터 2차, 3차 독립을 달성했다가 1946년에야 중국이 동의하고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네 번째 독립이자 최종 독립을 이루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반드시 온다. 초목은 싹을 틔우고 온갖 색깔의 꽃들은 지난해에 피었던 모양을 고맙게도 잊지 않고 그대로 피어날 것이다. 매년 겨울 뒤에 만나는 봄이지만, 새로운 삶을 대면하는 반가운 연례행사다. 사람이 행복하게만 사는 것이 아닐 테니 살면서 만나는 어려움과 복잡함도 매듭을 지을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매년 만나는 봄도 겨우내 삶의 고단함을 털어 내거나 일단락 지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한국에서 삼일절은 봄이 문턱을 넘어서는 시기다. 한국 역사에서 어려웠던 과거 역사가 계절의 변동과 함께 매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라 몽골 출신 다문화여성연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