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종합대책 확정]54년만에 사라지는 ‘1호 정신병원’ 국립서울병원 르포
이랬던 정신병원이… 국립서울병원 옛 병동 내 진정실(격리실) 문에 자물쇠가 보인다. 난폭해진 환자가 진정될 때까지 격리해 두는 곳이다(1). 1962년 지어진 이 정신병원의 모든 창문에는 쇠창살이 설치돼 있다(2). 과거 난폭하게 행동하는 환자들에게 사용했던 결박밴드는 최근 들어 많이 줄었다(3).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피해망상증 환자는 외부인을 굉장히 민감하게 생각해요. 정보요원들이 자기를 감시하러 왔다고 생각하는 환자도 많으니 카메라 촬영은 하지 마세요.” 간호사가 귀띔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남성 환자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험악한 표정으로 기자를 한동안 노려보았다.
이렇게 달라집니다 3월 2일 문을 여는 국립서울병원(‘국립정신건강센터’로 명칭 변경)의 새 병동 건물. 지하 3층, 지상 12층 규모의 이 병원은 모두 288개 병상을 갖추고 있다(1). 깨끗한 병실에는 철창 대신 강화유리를 썼고(2) 어린이 청소년 전문병동 벽에 설치한 자해방지용 대형 안전패드 색깔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연두색과 하늘색을 사용했다(3).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50여 년 전 시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이 병원의 내부 모습은 ‘정신병자’에 대한 당시의 사회적 인식을 보여주는 우울한 상징이기도 하다. 스스로 조절이 힘든 정신질환자들 때문에 1층의 개방병동보다 더 엄격하게 관리되는 폐쇄병동의 단적인 풍경이었다.
입원실의 벽 곳곳에는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누런 녹물이 흘러내린 채 말라붙은 얼룩도 곳곳에 보였다. 4∼6개씩 놓인 낡은 철제 침대 위의 이불 몇 채는 끝자락이 낡아 있었다. 난폭한 환자를 격리시키는 ‘진정실’, 환자를 고정시키는 의료용 족쇄 등은 정신병원의 공포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짙게 담고 있었다. 좁은 공간이 답답한지 계속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환자가 끊이지 않았다. 국립서울병원의 김현정 박사는 “‘정신병원이 혐오시설’이라며 이전을 요구하는 주민들과의 오랜 갈등으로 건물에 추가 투자를 하거나 리모델링하는 작업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복도 끝 강당에서는 환자들이 참여하는 사이코드라마가 진행 중이었고, 노래치료방에서는 고음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복도에는 환자들이 낙엽을 이용해 만든 그림들이 붙어 있었다. “안녕하세여어어…. 우리 의사 선생님 참 좋지요? 참 좋아요.”
20대로 보이는 한 청년 환자가 갑자기 불쑥 악수를 청하며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 환자를 지켜보던 간호사는 “감정 통제가 힘들어서 아무거나 던지고 발로 차고 욕하는 환자들에게 많이 두들겨 맞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이분들이 회복돼 가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 당당하고 편하게 찾아가는 정신병원
약 1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새 병동은 대형 종합병원과 다를 바 없는 최신식 설비와 가구로 단장돼 있었다. 밝은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입원실에는 철창도 자물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스마트키로 조절되는 문과 강화유리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하규섭 원장이 입원실 유리에 철제 의자를 직접 던져 부수려고 시도해 보면서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했다.
불안·스트레스과를 신설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전문병동을 강화한 것도 눈길을 끈다. 머리를 찧는 등의 자해를 막기 위해 벽에 설치한 대형 패드 색깔을 연두색과 하늘색으로 맞추는 등 특별히 신경을 썼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한 ‘인터넷 및 스마트폰 중독 치료 프로그램’은 앞으로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행복여행’이라는 이름의 이 치료 프로그램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를 콘셉트로 만들었다고 한다. 조성미 수간호사(55)는 “빡빡하게 짜인 병실 활동의 일정과 규칙을 통해 시간과 공간 개념을 되살리는 과정을 ‘시간도둑’에 맞서 싸우는 모모의 여행에 빗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정과 이성을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한 10대지만 의지가 있으면 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