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열 정책사회부 기자
11년 전 파업은 위력적이었다. 나흘간 항공기 979편이 결항되면서 12만9000명의 발이 묶였다. 다만 이번에는 파업이 실행되더라도 그때처럼 피해가 크진 않을 것 같다. 2008년부터 필수 공익 사업장에 항공업이 추가되면서 파업 기간 중에도 기존 국제선 노선의 80%(제주는 70%)는 정상적으로 운항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20%의 파업’이라도 기간이 길어지면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 현재 노사 간 의견 차도 커 극적 타결 가능성도 낮다. 사측은 1.9% 인상안을 제시한 반면 노조는 현재 1인당 평균 1억4000만 원인 조종사 임금을 37%나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조양호 회장의 임금이 37% 올랐으니, 조종사 임금도 그만큼 인상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한항공에는 기업별 노조가 3개 있다. 교섭대표이자 파업 투표를 주도한 조종사 노조(1노조·1085명)는 민노총 소속이다. 반면 2013년 1월 설립된 ‘조종사 새노조’(2노조·759명)는 상급 단체가 없다. 2노조는 파업 투표에도 195명만 참여했다. 비조종사 직원들로 구성된 일반 노조(1만826명·한국노총 소속)는 이미 1.9% 인상에 합의했다. 특히 일반 노조는 성명을 통해 “절박한 생존권 요구가 아니다. 기타 직종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며 1노조를 비난하기도 했다. 일반 노조의 평균 연봉은 6000만 원 정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상위 10% 이내 임금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9287만 원(2014년 기준)이다. 9·15 노사정(勞使政) 대타협 합의문에는 “근로소득 상위 10% 이상 임직원이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이를 통해 마련한 재원을 청년 채용과 비정규직, 협력업체 임직원 처우 개선에 쓰자”는 문구가 있다. 상위 10% 이내 고소득자들이 임금을 동결하면 정규직 9만 명을 새로 고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한국노동연구원)도 있다.
국내 조종사 임금이 중국이나 선진국보다 적은 건 맞다. 하지만 조종사 노조가 노사정 합의문과 이런 자료들을 제대로 봤으면 임금을 37%나 올려 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노조에 주고 싶은 통계가 하나 더 있다. 국내에서 연봉 1억 원 이상인 근로자는 35만 명. 국내 전체 임금근로자(1404만 명)의 2.5%(고용부 통계)밖에 되지 않는다.
유성열 정책사회부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