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송평인]부르튼 입술의 한국 정치

입력 | 2016-02-27 03:00:00


TV에 매일 등장하는 장관이나 정치인은 아무래도 신언서판(身言書判)이다. 그들이 하는 말이나 글, 그 속에 담긴 판단력도 중요하지만 역시 눈에 보이는 모습이 우선이다. 이런 장관이나 정치인이 입술이 부르트거나 얼굴에 염증이 생기면 곤란해진다. 이 정도로 공개석상에 등장하지 않을 수도 없고 등장하자니 위엄이 안 선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고군분투한다는 인상을 줘 오히려 좋은 점수를 얻기도 한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폐쇄 발표를 하면서 코 밑에서 오른쪽 입술 사이가 크게 부르튼 모습으로 나타났다. 설 직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강행한 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다. 본래 약해 보이는 인상인 데다 염증이 나자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한 신문은 홍 장관이 개성공단 폐쇄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에서 엄청 깨진 것처럼 보도했다. 거기에 홍 장관 사진을 붙여놓으니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럴듯해 보였다.

▷최근에는 체구도 건장하고 혈색도 좋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왼쪽 윗입술이 터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국회는 공전을 거듭하고 당내에서는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의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친박계로 분류되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 업무를 시작하자 심한 압박을 받는 듯하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얼마 전 왼쪽 아랫입술이 부르텄다. 신당 창당 이후 정점을 쳤다가 끝없이 하락하는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강행군을 하느라 피로가 첩첩이 쌓이는 모양이다.

▷“난 사람의 얼굴만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영화 ‘관상’에 관상쟁이로 등장하는 주인공 송강호가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이 아니라 시대로 눈을 돌려보면 지금 입술이 부르튼 건 우리 정치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는다고 밤낮으로 필리버스터를 하느라 피곤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하다 하다 못해 필리버스터까지 하며 법안 통과를 막는 국회 모습에 책상을 10차례나 내려칠 정도로 화가 난다. 뾰족한 처방전도 없으니 더 답답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