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덕후’ 이종원씨 모델로 참 덕후 검증하기
《 최근 ‘덕후’(마니아를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에서 비롯된 말)의 이미지가 ‘골방에 틀어박힌 마니아’에서 ‘학위 없는 전문가’ ‘능력자’ 등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덕후가 대중에게 인기를 끌자 ‘덕밍아웃’(덕후라고 공개하는 것) 대열에 참여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하지만 덕후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진짜 ‘덕후’로 인정받기 위해선 최소한의 검증도 필요하다. 기자는 여러 덕후와 주변인들로부터 조언을 얻어 덕후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 기준을 정한 뒤 이를 적용해보기로 했다. ‘버스 덕후’로 알려진 이종원 씨(20)를 만나 그의 ‘덕력’(덕후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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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임의로 뽑은 버스 사진을 즉석에서 들이밀어도 해당 버스의 역사와 특징을 척척 대답한 ‘버스 덕후’ 이종원 씨. 100여 년이 된 한국 버스의 자료를 망라해 ‘버스 대백과사전’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아시아 AB236R, 1981년 출시됐지만 6대만 생산되고 만 비운의 버스죠.”(이 씨)
“(허걱) 아, 그럼 이건요?”(기자)
“이건 대우 BF101이네요.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네요. 얼마 전에 미얀마 가서 직접 보고 왔어요(웃음).”(이 씨)
“네? 미얀마요?”(기자)
이종원 씨가 미얀마에서 발견한 대우 BF101 버스. 겉만 빼고 대부분 개조됐 지만 이 씨는 “남아 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고 했다. 이종원 씨 제공
“옛날 버스를 타본 어린이들은 역사체험을 하고 윗세대와 소통할 기회도 생기죠. 세대 간 골이 깊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매개로 소통할 기회가 생기면 좋을 텐데….”
버스 덕후의 철학에 감화될 즈음 기자는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덕후의 진짜 조건 중 하나가 ‘일반인 코스프레’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진짜 덕후는 아무 곳, 아무 때나 덕후임을 뽐내지 않는다. 필요할 때는 ‘일반인인 척’하는 ‘일반인 코스프레’를 한다고.
화제를 여자친구 얘기로 돌리며 여자친구에게 덕질 자랑을 하는지 넌지시 유도해 봤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