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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의술]3代를 뼈 깎는 ‘통증’ 고통에서 해방시킨 ‘약손’

입력 | 2016-02-29 03:00:00

이상철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국내 통증치료의 선구자로 꼽히는 이상철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가 대상포진 후 신경통을 앓고 있는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 교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 지속되면 조기에 진료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우리 몸은 불에 데는 등 일정한 자극을 받으면 통각신경이 흥분돼 통증을 느끼도록 돼 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경고음이다. 하지만 별다른 자극이 없는데도 지속적으로 아프면 만성통증이라고 부른다. 명확한 원인을 모른 채 통증에서 벗어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김도현 씨(48)가 그랬다.



#1. 뼈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의 시작

1998년 6월 12일. 김 씨가 교통사고를 당한 날이다. 멍든 것 말고는 멀쩡해 보여 금세 퇴원했는데 1, 2주 후부터 허리가 아팠다. 등을 째고 척추 수술을 받았는데 낫기는커녕 아픔이 점점 심해졌다. 심할 땐 뼈가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유명하다는 병원엔 다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고통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김 씨를 미치게 했다. 늘 얼굴을 찌푸리고 다녔다. 버스에서 한 남성이 “왜 사람을 보고 인상을 쓰느냐”며 멱살을 잡은 적도 있다. 허리를 구부리는 게 너무 아파 화장실에 갔다가 뒤처리를 제대로 못할 때도 있었다. 수술 전엔 정상이었던 체중이 13kg이나 줄었다.

석가가 ‘생(生)은 고(苦)’라고 했다지만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김 씨는 수면제를 병째 입에 털어 넣었다. 전부 다 토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진통제를 단번에 집어삼켰다. 또 토해냈다. 뛰어내릴 생각으로 아파트 베란다에 한참 서 있다가 난간을 잡은 손이 얼어붙었을 때쯤 다시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자신의 짜증을 매일 묵묵히 받아주는 아내의 옆자리로. 그렇게 9년이 흘렀다.

#2. 통증 명의의 시작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88년 12월 1일. ‘통증의학을 배워 오라’는 스승의 특명을 안고 이상철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62)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통증관리센터에 도착한 날이다. 당시 국내엔 통증치료실을 갖춘 병원이 극소수였고 관련 연구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교수는 주말마다 다른 의사를 도와 교포 진료 봉사활동을 하던 중 우연히 통증 의원을 운영하는 유대인 의사를 만났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척수자극술’ 등 최신 의술을 실제로 활용하는 곳이었다. 이 교수는 당장 일주일에 이틀은 이 병원에 출근하며 시술법을 배웠다.

한국에 돌아온 이 교수는 1991년 서울대병원에 처음 통증치료실을 만들고 2년 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을 앓고 있던 한 80대 노인을 만났다. 대상포진이 나은 뒤에도 신경이 손상돼 통증이 지속되는 질환으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치료 시기를 놓치기 쉽지만 만성화되면 경우에 따라 산통(産痛)보다도 강한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교수는 이 노인을 상대로 국내 최초로 척수자극술을 성공시켜 통증을 씻어줬다. 몇 년 후 그의 딸도 이 교수로부터 무릎 신경을 치료받았다. 이때만 해도 이 교수는 그 노인 환자의 외손자인 김도현 씨까지 자신의 진료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3. 3대째 이어진 환자와 의사의 인연

2007년 김 씨는 어머니의 권유로 이 교수를 찾아갔다. 다른 의사들처럼 제대로 진찰도 하지 않고 진통제만 잔뜩 처방하지 않을까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김 씨의 상태를 자세히 묻고 이곳저곳 검사해 보더니 신경차단술을 권했다. 다른 신체기능엔 별 도움을 주지 않고 통증만 유발하는 신경을 치료하자는 제안이었다.

시술을 받은 뒤 김 씨의 통증이 서서히 줄었다. 주위에서도 매일 짜증을 내곤 했던 김 씨의 표정이 온화해진 것을 알아봤다. 김 씨는 “치료 후 ‘사람 됐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며 웃었다.

#4. 끝나지 않은 숙제

이 교수를 찾아온 환자 중에는 ‘기적’에 가깝게 호전된 사람도 많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통증 중 가장 강하다는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을 앓다가 치료 후 휠체어에서 일어난 20대 청년, 전립샘 암이 온 몸에 전이됐지만 신경 치료 후 골프장까지 갈 수 있게 된 70대 노인….

하지만 모든 환자가 ‘구원’을 받은 건 아니다. 악성 췌장염에 걸린 50대 남성은 신경을 파괴하고 췌장을 떼어내도 복통이 줄지 않았고, 원인 불명의 섬유조직염 탓에 온 몸이 아팠던 30대 여성에게도 마땅한 시술 방법이 없었다. 이들이 병원에 발길을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는 기별이 들려왔다. 이 교수는 두 환자의 죽음을 자책하게 되는 마음을 잊을 수 없었다.

이 교수가 대한척추통증학회장과 세계통증학회 동북아지부장 등을 맡아 꾸준히 학회를 열고, 최근까지도 각종 통증치료법을 국내에 도입하고 있는 이유도 ‘의사가 배우는 걸 멈추면 통증과의 싸움에서 지는 환자가 늘어난다’는 지론 때문이다.

이 교수는 “환자가 고통에서 벗어나 밝게 웃을 때가 가장 기쁘다”며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을 앓고 있다면 초기에 진료를 받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서울대병원 통증센터에서는 이 교수를 비롯해 교수 3명, 진료 교수 2명, 임상 강사 4명 등 다수의 전문 의료진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통증 관련 시술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