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新월세시대 매물찾기-계약-입주관리-분쟁으로 본 월세 인프라, 5점 만점에 2.35점 그쳐
조 씨는 당초 월세로 살지 않을 작정으로 포털 사이트와 부동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부터 찾았다. 전세 물건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 전세가 이렇게나 많은데….” 공인중개사무소에 전화를 걸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월세는 제각각이었다. 같은 크기의 아파트인데도 보증금은 2억∼4억 원에, 월세는 30만∼100만 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결국 조 씨는 전셋집 찾기를 중단했다. ‘이사하면 이사비용, 중개보수도 더 드니까 딱 2년만 월세로 살아보자.’
☞ 본보 전문가 월세 인프라 설문조사에서 정보탐색 단계는 5점 만점에 2.44점으로 평가됐다. 미국 유럽은 임대주택 전문 온라인 정보업체나 임대주택관리협회 등이 직접 매물을 관리해 신뢰성 높은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한국은 공인중개사들이 올린 매물이 제대로 된 건지 알기 어렵다. 또 지역별, 유형별로 전·월세 전환율이 제각각이어서 적정 임대료 수준을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경우 정부가 지역·유형별 표준임대료를 제시하고 임대료 인상 가이드라인과 분쟁 시 조정 기준으로 활용한다.
직장인 이성원 씨(39·서울 관악구 봉천동)는 지난해 8월 처음으로 월세 생활을 시작했다. 109m² 아파트, 보증금 2억 원에 월 80만 원. 임대차계약은 전세 때 많이 해봤다. 등기부등본도 열람했고, 선순위 근저당권 여부도 따져봤다.
“대충 됐네요. 계약이 끝나면 ‘원래 상태’로 돌려놓으셔야 합니다.” 공인중개사가 보여주는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를 힐끗 보고 도장을 찍었다. 그게 실수였다. 하자가 눈에 띄거나 새로 생길 때마다 갈등의 씨앗이 됐다. 집 상태를 하나하나 미리 확인하고 애매한 건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주부 조 씨는 생활 씀씀이가 줄었다. 장 볼 때 물건을 들었다가 월세가 생각나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집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매달 40만 원씩 꼬박꼬박 내다 보니 집에 내 돈 들이기가 아까워졌다. 전세 살 땐 최소 2년은 내 집이었다.
월세 받는 집주인도 갑(甲)은 아니다. 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주택을 월세로 내놓은 김성애 씨(65)는 쉬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에 노이로제가 걸렸다. “툭하면 ‘이것 고쳐주세요’ ‘영수증 보낼 테니 월세 감액해 주세요’라고 말해요. 전세 놓았을 때는 마음이 편했는데….”
매달 월세 들어왔는지 확인하기도 힘들어 문자메시지로 통보받는 서비스도 난생처음 신청했다. 이달에도 제때 안 들어왔다. “휴∼. 현금 받는 재미가 쏠쏠할 줄 알았는데 꼬박꼬박 받아내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
서울시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의 서혜진 주무관은 ‘애정녀(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여자)’다. 밀려드는 전·월세 상담에 수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센터 직원 9명이 하루에 200건 이상의 상담을 처리한다. “월세가 부쩍 늘었다는 게 실감나요. 예전엔 전화 10통 중 2통 정도가 월세 문의였다면 지금은 10통 중 6통쯤 돼요.”
월세 체납, 보증금 반환에 대한 문의가 많다. 하자 수선에 대한 책임소재를 따지는 질문도 많다. 기본 원칙은 있다. 민법 623조 및 판례에 따르면 주요 설비(난방, 상하수도, 전기시설 등)의 노후·불량에 따른 수선은 임대인 부담, 임차인의 고의·과실, 전구 등 간단한 수선, 소모품 교체 비용은 임차인이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상담 사례를 주택임대차보호법 13개 조항 안에서 판단하긴 어렵다. “전구는 그렇다 치고 형광등 안정기는 집주인이 갈아줘야 하지 않나요.” “3만 원이 소액인가요. 월세 10분의 1인데.” “보일러가 7년 넘으면 집주인 책임이라뇨. 요즘 보일러가 얼마나 좋아졌는데….”
☞ 김찬호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공적분쟁조정제도가 잘 갖춰진 유럽처럼 실효성이 담보되려면 표준임대료, 임대료 인상 기준, 하자 분쟁 기준 등 제도적 인프라부터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영 redfoot@donga.com·천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