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기 경제부 기자
그녀가 난데없이 이민을 떠난다고 했다. “남들이 모두 선망하는 회사까지 그만두고 호주에 가면 뭐 해 먹고 살 건데”라며 아쉬운 마음에 힐책하듯 그녀에게 물었다. 답은 놀라웠다. “나는 일단 쉬고, 남편은 ‘벽돌학교’에 입학하려고.”
벽돌 쌓는 전문 기술을 가르쳐 주는 직업훈련기관을 친구는 ‘벽돌학교’라고 불렀다. 서울 시내 명문대 토목공학 석사인 그녀의 남편은 벽돌학교를 다녀 기술을 익히고 영주권을 얻을 계획이다. 현지에 적응하면 관련 사업도 해볼 작정이다.
하루에 180만 원이면 결코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평생 공부만 하던 사람들이 괜찮겠나 하는 걱정이 앞서 “왜 이런 결심을 한 거냐”고 물었다. 친구는 많이 들은 질문이어서 귀찮다는 듯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앞이 안 보여서.”
실제로 최근 국내 경제지표들을 보면 그녀가 느꼈을 ‘불안한 미래’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 지난해 한국의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37만3000원으로 1년 전보다 1.6%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의 증가율이다.
소득이 찔끔 늘어나는 동안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값은 5237만2000원이 올랐다. 서울 사는 부부는 13년을 벌어야 겨우 집 한 채를 장만할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도 소득과 집값의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을 사고 전세를 구하려면 빚을 내는 수밖에 없다. 정부도 그러라고 이자도 깎아 주고 대출 규제도 풀어 줬다. 그 덕에 지난해 가계부채는 1200조 원을 돌파했다. 부채 부담이 늘자 가뜩이나 얇아진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56만3000원으로 전년보다 0.5% 증가했지만 소비자 물가상승률(0.7%)을 감안하면 전년보다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소비가 위축되니 기업 경기도 침체되고 다시 국가 경제 전체가 나빠지는 악순환이다.
하지만 그 말에 동의하긴 쉽지 않다. 친구 부부는 대기업에서 맞벌이로 열심히 일했지만 오르는 전세금을 충당하기에도 버거웠다고 했다. 그들은 결국 호주의 벽돌학교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떠나려 한다. ―세종에서
신민기 경제부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