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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손병권]선거구 획정, 국회에 또 맡기지 말라

입력 | 2016-02-29 03:00:00


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선거구 획정 합의안이 28일 오전에야 비로소 만들어졌다. 4월 총선을 코앞에 두고 가까스로 획정안이 도출되어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그간 획정위가 파행을 겪고 지연을 거듭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그간의 이런 답답한 현상이 정말 선거구획정위원회만의 탓이었는지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6월 선거법 개정을 통해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국회에서 독립하여 선거관리위원회 소속으로 출범하자 ‘헌정사상 처음’으로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받는 획정위가 공정하게 선거구 획정을 논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일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기대와는 달리 출범과 수십 차례 회의 이후 위원장과 위원이 사퇴하는 가운데 선거구 획정은 지연돼 왔다. 그 문제의 본질적 원인은 획정위에 대한 국회의 표면상의 입법권 위임이 획정위의 실질적인 독립을 보장해 주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고 보인다.

획정위가 국회에서 독립돼 선관위 소속으로 바뀌었고, 획정위의 획정안이 사실상 국회의 수정 없이 최종적으로 채택되도록 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진 것은 제15대 총선 전인 1994년 국회 내에 획정위를 설치하기로 한 이후 가장 괄목할 만한 진전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번 개정 선거법 조문(개정 선거법 24조 4항)에서 선관위가 지명하는 1인의 획정위원과 외부 추천인사 가운데 기타 8인의 획정위원을 국회가 의결로 선정하게 되어 있는데 이게 바로 문제의 진원지가 됐다.

여야가 대립하듯 4 대 4로 추천 획정위원 간의 의견이 양분될 경우 3분의 2의 찬성으로 획정안을 확정한다는 초(超)다수제 획정위 규정은 사실상 선거구 획정안의 도출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국회 밖에 획정위가 설치되고 획정위 안을 국회가 수용해야만 하는 선거법 개정만으로는 획정위의 실질적인 독립이 불가능하다는 게 국회의 표피적 입법위임의 결과다.

그럼 어떻게 바꾸어 나가야 하는가. 그 해법은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획정위가 위원 구성에서 실질적으로 국회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하고, 획정위의 최종적 의사 결정이 일정 기간 내에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첫 번째로 국회가 공정한 선거구 확정을 위해 획정위의 독립적인 운영을 원한다면 획정위원의 구성은 국회의 의결에 맡길 일이 아니다. 획정위가 독립적인 전문가 기관이 될 수 있도록 획정위원 선정 권한을 국회 외부에 두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것이 국회의 권한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면 국회가 이에 대해서 검토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 역할은 획정위를 보완하는 데 그쳐야 한다.

두 번째로 기존 방식뿐만 아니라 새로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된 획정위 내에서도 위원 간 이견이 팽팽해서 획정안 합의 도출이 어려운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서 3분의 2의 획정위 의결 방식은 그대로 두되, 최종 시한을 정해서 이때까지 합의 도달이 어려운 경우는 과반수 다수결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대강의 취지에 따라서 획정위의 실질적인 독립과 최종적인 의사 결정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개선안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강구돼야 한다.

이 밖에도 수많은 선거구 관련 자료를 취합하고 분석해야 하는 획정위를 선거 기간에 즈음하여 짧은 기간 가동하는 것도 문제가 있으므로 획정위의 상설화도 고려해 봐야 한다. 이와 관련해 선거 때에 분주히 획정위를 구성하는 것보다는 인구센서스 결과를 토대로 주기적인 선거구 획정이 가능하게 하여 획정의 자동성과 선거구의 안정성을 도모하는 것도 필요하다.

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