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보호와 국가안보는 어느 쪽도 경시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다. 9·11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미국은 시민의 통신기록 도·감청을 허용하는 애국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곧 ‘감시자를 누가 감시할 것인가’라는 근원적 문제가 드러났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에 근무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 정부가 프리즘 프로젝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을 감청하고 금융계좌를 뒤진 사실을 폭로한 뒤 러시아로 망명했다.
▷국내에서 테러방지법안 처리를 막기 위한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애플의 잠금장치 해제 거부에 빗대 칭송하는 목소리가 있다. 북한과의 긴장, 이슬람국가(IS)의 협박 속에서도 대테러 활동에 무력하기만 한 우리나라와 애국법이라는 막강 권한을 가졌던 미국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NSA의 감시 프로그램은 미국 연방법원에서 위헌 판정을 받았다. 한시적인 애국법도 폐기되고 작년 6월 법원 허가에 따른 제한적 감청과 자료 수집만 가능케 한 자유법이 발효됐다. 이 자유법도 우리나라의 테러방지법보다는 훨씬 강력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