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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D/Face to Face]‘뇌물수수 1심 무죄’ 조현오 전 경찰청장 단독인터뷰

입력 | 2016-02-29 15:45:00

“검찰권력에 도전하면 누구라도 조현오처럼 당한다”
“민정에서 ‘경찰청장 조폭 관련설’ 대통령에 보고”

● 재판부 ‘검찰의 협박, 회유’ 가능성 언급
● “내가 조폭한테 투자해 월 2500만 원씩 배당받는다고…”
● “권재진 전 민정수석에게 수사권 문제로 협박받아”
● 권 전 수석 “전혀 사실 아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했다. 박해윤 기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선지 그의 얼굴엔 여유가 넘쳤다. 느릿느릿하고 육중한 말투는 여전했다. 조현오(61) 전 경찰청장과의 인터뷰는 3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짐작한 대로 그는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아울러 재임 중 수사권 조정 및 경찰간부 인사와 관련해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충돌했던 얘기도 털어놓았다.

2월 17일 부산지방법원 형사합의5부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부산 건설업체 S건설 실소유주 정모 씨로부터 인사 청탁 대가로 두 차례에 걸쳐 5000만 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서울경찰청장이던 2010년 8월 3000만 원, 경찰청장으로 재직하던 2011년 7월 200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그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의 축은 2개다. 하나는 조 전 청장 본인의 뇌물수수 혐의이고, 다른 하나는 지인의 알선수재 혐의다. 후자는 그의 중학교 동창생 2명이 그에게 인사 청탁을 해준다며 각각 1200만 원, 100만 원을 받았다는 혐의다. 법원은 두 사람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1라운드이긴 하지만, 검찰의 완패로 끝난 셈이다.


박해윤 기자

“청장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조 전 청장이 정씨와 알고 지낸 건 사실이다. 검찰은 “밀접한 친분관계를 유지했다”고 주장했다(공소장). 반면 법원은 두 사람의 친분을 인정하면서도 “돈을 수수할 정도로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판결문). 공소장에 따르면 두 사람은 2008년 부산경찰청장과 부산경찰청 행정발전위원으로 처음 만났다. 조 전 청장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2008년 10월 27일 정씨가 부산경찰청 발전위원회에 입회했다. 그때 나를 처음 봤다는데, 나는 본 기억이 없다. 입회한 사람이 수십 명이고 한꺼번에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수십 명과 같이 식사를 했는데 어떻게 기억하느냐.”

▼이후 계속 만나지 않았나.

“부산청장 시절 김모 정보과장이 ‘괜찮은 사업가’라고 소개해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청사 주변 한정식집에서 점심을 했다. 정씨는 나와 서너 차례 점심식사를 했다고 하는데, 내가 기억하는 건 딱 한 번뿐이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하는 만남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법정에서는 ‘두어 번 만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는 여러 번 만났다고 진술했는데.

“내가 부산청장을 지낸 다음 경기청장을 할 때는 자기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서울청장 시절 두 번 만났다는데, 하필 내가 경찰청장에 내정돼 청문회 준비로 바쁠 때 찾아와 3000만 원을 건넸다고 했다. 그리고 이듬해 경찰청장 재임 중 휴가지인 부산 해운대 호텔에서 만나 2000만 원을 줬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먼저 연락해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

▼해운대 호텔에서 아예 만난 사실이 없나.

“없다.”

▼경찰청장 관사에서도 안 만났나.

“관사에서는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관사에서 사람들을 자주 만났나.

“정씨뿐 아니라 누구라도 부산 사람이 청장 집무실이나 관사로 찾아오겠다 하면 거절한 적이 별로 없다. 정말 문제 있는 인물이면 몰라도. 서울청장, 경찰청장 재임 중 집무실, 관사를 찾아온 사람이 1000명이 넘는다.”

그에 따르면 정씨는 전형적 친분과시형이었다.

“술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청장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청장님 편입니다. 격려말씀 해 주시죠’ 이런 말을 늘어놓으며 동석한 사람들을 바꿔주곤 했다. 그런 전화를 밤늦게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어쨌든 정씨를 관사에서 만난 게 빌미가 됐다.  

“불쑥 전화를 걸어와 ‘청장님 뵈러 서울 올라왔다’고 했다. 저녁 때 행사자리에 갔다가 귀가하던 길이었다. 그래서 ‘와서 차나 한 잔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삼화저축은행 회장 신삼길이라는 사람과 같이 왔더라.”

▼신씨와는 모르는 사이였나.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와인을 들고왔기에 같이 한 잔 했다. 검찰에 따르면 그 자리에서 신씨가 내게 경찰간부 인사 청탁을 해 나중에 그대로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와 만날 때는 이미 인사가 끝난 후였다.”


잇따른 구속영장 기각


이 사건의 배경은 정씨와 부산 폭력조직 Y파 행동대장 이모 씨, 그리고 이씨와 친한 신씨 사이의 이권 다툼이다. 세 사람은 부산 용호만 매립지 공사와 상가분양 사업의 동업자였다가 사이가 틀어졌다.

▼정씨가 조폭과 관련된 사실을 몰랐나.

“전혀 몰랐다. 전화 오면 받아준 거지, 내가 먼저 전화한 적은 없다.”

▼국내 최고의 정보력을 가진 위치였는데 정씨에 대해 그토록 몰랐나.

“전혀 몰랐다. 조폭과 관련된 사람인 줄 알았다면 근처에 못 오게 했을 거다. 내가 조폭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세 사람의 분쟁에 한몫한 것이 탤런트 김모 씨였다. 상가분양 모델로 나섰다 모델료도 못 받고 약속받은 상가도 분양받지 못한 김씨는 이씨를 사기 및 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수사에 나선 검찰은 이씨를 구속했다. 하지만 그는 한 달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왔다. 이어 그의 반격이 시작됐다. 김씨의 뒤에 정씨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부하 임모 씨를 시켜 정씨의 비위사실을 적은 진정서를 대검찰청에 접수했다. 진정서에는 정씨의 회사공금 횡령 혐의와 더불어 정․관계 인사 로비내역이 담겼다.

지난해 봄 대검으로부터 진정서를 넘겨받은 부산지검은 정씨와 조 전 청장의 관계에 주목했다. 먼저 정씨를 횡령 혐의로 체포한 다음 조 전 청장에게 5000만 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검찰은 그 돈을 경찰간부 승진인사 청탁에 대한 대가라고 봤다. 하지만 법원은 정씨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영장을 재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또 기각했다. 정씨 진술의 허점 외에 당사자인 조 전 청장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도 기각사유 중 하나였다.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려…”


증거라고는 정씨 진술밖에 없었다. 법원은 검찰이 내세운 몇 가지 정황증거를 배척했을 뿐 아니라 거꾸로 무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가 정씨의 위증 가능성을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  

“피고인 정OO은 당초 피고인 조현오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와 함께 약 40억 원에 달하는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를 받았는데, 위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정OO의 법률상 배우자인 서OO 및 내연녀인 김OO 등 가족도 관련됐던 점, 정OO이 이 부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할 무렵 정OO의 주거지, 서OO의 주거지, 주식회사 S건설 사무실 등에 대한 광범위한 압수수색과 함께 서OO, 김OO에 대한 수사가 이뤄졌던 점, 정OO은 2012년 6월 27일 부산고등법원에서 특정경제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횡령) 죄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어 위와 같은 횡령 혐의가 인정될 경우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앞선 집행유예 또한 실효됨으로 인해 장기간 수형생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점 등에 비춰 보면, 정OO이 자신 및 가족의 위와 같은 횡령 혐의로 인한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진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그에게 어떤 범죄의 혐의가 있고 그 혐의에 대해 수사가 개시될 가능성이 있거나 수사가 진행 중인 경우에는 이를 이용한 협박이나 회유 등의 의심이 있어 그 진술의 증거능력이 부정되는 정도에까지 이르지 않은 경우에도 그로 인한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진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부 등도 아울러 살펴보아야 한다.”

조 전 청장 주변 인물들에 대한 수사는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두 차례 기각된 후 시작됐다. 검찰은 조 전 청장의 가족을 비롯해 그와 가까운 사람들의 계좌와 통화기록 등을 샅샅이 뒤졌다. 그래서 포착한 것이 곽모 경감의 인사청탁과 관련한 조 전 청장 지인 2명의 알선수재 혐의였다.

당시 곽 경감은 동부산 관광단지 상가분양 비리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상태였다. 검찰은 그를 추궁해 조 전 청장 관련 혐의를 추가로 찾아냈다. 곽 경감은 2010년과 2011년 두 차례 자신의 친구 장모 세무사를 통해 조 전 청장의 중학교 동창생인 송모 농협 조합장과 박모 교수에게 승진을 부탁하면서 1300만 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처음엔 1000만 원, 두 번째는 300만 원이었다.


“비자금 털어놓아라”


검찰에 따르면 1000만 원 전달경로는 ‘곽 경감→장 세무사→박 교수→송 조합장’이고, 300만 원은 ‘곽 경감→박 교수→송 조합장’이다. 300만 원 중 100만 원은 박 교수가 중간에서 챙겼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12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송 조합장은 126일간 옥살이하다 보석으로 풀려났고, 박 교수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송 조합장은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고, 박 교수는 처음엔 시인했다가 나중에 부인했다. 박 교수는 법정에서 검찰의 강압수사에 따른 거짓자백이었다고 진술했다.

송 조합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조현오를 잡으려 말도 안 되는 수사를 했다”며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곽 경감을 아나.

“법정에서 처음 봤다. 통화한 적도 없다.”

▼조 전 청장에게 곽 경감의 승진을 부탁한 적 있나.

“중학교 동기인 박 교수가 그 건으로 내게 전화한 적은 있다. ‘친구(장 세무사)의 친구인데 조 청장한테 승진을 부탁할 수 있냐’고 하기에, ‘너도 조 청장 잘 아니 직접 얘기하라’고 말해줬다. 그게 끝이다. 이후 그 건으로 더 얘기한 적 없다.”

▼조 전 청장에게 그 얘기를 전해줬나.

“안 했다. 그런데 내가 그때 박 교수와 통화를 하며 명함 한쪽에 곽 경감 이름을 적어놓았다. 검찰이 압수수색할 때 그게 걸렸다. 검찰은 ‘박 교수가 다 인정했다’며 나를 추궁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수사관과 싸웠다. 일주일도 안 돼 박 교수가 말을 바꿔 혐의를 부인했다. 애초 구속영장에는 내가 1200만 원 받은 걸로 적혔다. 그런데 공소장에는 돈 부분이 빠졌다. 박 교수가 계속 부인하니 검찰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둘이 공모했다’ ‘돈을 받기로 했다’ 따위의 표현만 있고 ‘돈을 받았다’는 얘기는 없다.”

그는 “내가 왜 126일 동안 구속됐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대한민국 법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조현오를 잡아넣으려 나를 20일간 강도 높게 조사했다. 내가 일주일째 부인하자 검사도 어느 정도 인정했다. 그때부터는 1200만 원 부분을 조사하지 않는 대신 조 청장의 비자금을 캐려 했다. 내게 ‘수사에 협조해달라’며 ‘조 청장에게 용돈 준 것 얘기해달라’ ‘비자금을  털어놓아라’고 했다.”

▼그래서 털어놓은 게 있나.

“없다. 내가 조 청장에게 왜 돈을 주나. 다만 조 청장 출판기념회 때 내가 사비 200만 원을 들여 책 200권 사서 지인들에게 돌린 적은 있다. 한 번은 조 청장이 우리 농협 여성대학에서 강의한 적이 있다. 그때 강사료로 200만 원 줬다. 그 외는 아무것도 없다. 수사관은 ‘받았냐, 안 받았냐’고 묻는 게 아니라 ‘받았잖으냐’고 삿대질을 하며 다그쳤다. 나뿐 아니라 우리 직원 4명도 조사를 받았다.”

▼법정 최후진술에서 검사들을 비판했다고 들었다.

“재판장에게 ‘조사를 담당했던 검사 두 사람에게 따끔하게 한 말씀 해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윽박지르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꾸며 사건을 만들면 안 된다’고 말이다.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지자 판사가 물끄러미 보더라.”

한편 박 교수는 “아직 재판이 다 안 끝났다”며 말을 아꼈다. “당분간 그 얘기는 안 하고 싶다. 내 인생에 치욕적인 일이다.” 그는 검찰의 강압수사가 있었느냐고 묻자 “다 아는 얘기를 뭐…”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동창회․산악회 회비계좌까지 뒤져”

조 전 청장 주변에서는 검찰이 보복 차원에서 과잉수사를 벌였다고 본다. 청장 재임 시 유난히 경찰 수사권 독립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며 검찰과 마찰을 빚은 데 대한 ‘손봐주기’라는 시각이다. 물론 조 전 청장도 같은 생각이다.

“통상 구속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되면 그 수사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부산지검 특수부의 모든 수사력을 동원해 3개월간 나를 팠다. 나와 가족의 카드 사용내역을 확인하고 계좌를 추적했다. 심지어 골프 라운딩 기록까지 훑어 누가 예약했는지, 누가 돈을 냈는지, 동반자가 누구였는지 조사했다. 여행사에 내 외국 여행 기록을 요구해 동반자 명단을 확인했다. 내 초등학교․중학교 동창회와 산악회 회비 계좌까지 뒤졌다.”

▼비자금을 찾으려 했다는 건가.

“그렇다. 그리고 통화기록을 뒤져 나와 통화를 가장 많이 한 친구를 소환해 네 번이나 밤샘조사를 해 노이로제 걸리게 했다. 나와 가까운 농협 조합장은 억울하게 옥살이했다. 이게 표적수사 아닌가. 뭐 때문에 그랬겠나. 내가 재임 중 수사권 조정 문제로 검찰과 대립각을 세우고, 경찰청에 범죄정보과를 만들어 검사들의 비리를 수사하게 했기 때문 아니겠나. 내 주변에서는 윤모 용산세무서장 사건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본다.”

2012년 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현직 검찰 간부의 형인 윤씨를 조사했다. 육류 가공업체 대표로부터 금품과 골프 접대 등을 받은 혐의였다. 경찰 소환에 응하지 않고 홍콩으로 도피했던 그는 이듬해 타이에서 불법체류자로 잡혀 강제 송환됐다. 지난해 검찰은 ‘대가성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무혐의 처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 사건으로 구속돼 수감생활까지 했는데, 검찰이 또 표적수사를 할 이유가 있을까.

“검찰에 물어봐야지. 조현오 개인에 대한 응징의 뜻도 있겠지만, 누구라도 감히 검찰권력에 도전하면 이렇게 당한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려 했을 수도 있다. 죄 없어도 돈 한 푼 안 받았어도 이렇게 망신당하고 곤욕 치르는 것 봤지, 조현오처럼 되고 싶으면 얼마든지 수사권 문제를 떠들어라, 하고.”

조 전 청장은 서울청장 시절인 2010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한 것은 차명계좌가 발견됐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가 사자(死者)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재임 중 수사권 문제로 검찰과 직접 부딪친 적이 있나.

“검찰 출신인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나를 만나 ‘경찰을 통제 못하면 내 처지가 곤란하다’고 노골적으로 압박한 적이 있다.”

▼통제 못한다는 건 어떤 뜻인가.

“내가 수사권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물론 경찰에 대한 검찰의 규제를 엄격히 따지고 드니 그런 것이다. 친정인 검찰 보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민정수석의 ‘경고’

▼권 수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했나.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건을 거론했다. ‘차명계좌 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데, 조 청장이 수사권에 대해 그렇게까지 얘기해도 되냐’고 하더라.”

▼언제 어디서 만났나.

“2010년 8월 말 경찰청장에 취임했다. 그해 말부터 수사권 문제가 불거졌으니 2011년 초였을 거다. 코리아나호텔 중식당에서 단 둘이 만났다.”

▼뭐라 답변했나.

“그건 애기하지 않겠다. 하여간 굴복하지 않았다.”

▼권 수석이 경고를 하려 만난 것인가.

“그래서 식사 분위기가 어색했다.”

▼그런 식으로 가끔 만났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생각해보라. (그 자리에) 민정수석으로 나온 건가, 검찰 대변인으로 나온 건가. 이명박 대통령께서 ‘경찰 주장을 잘 반영해 형사소송법 개정을 하라, 경찰에 양보를 하라’고 했다. 민정수석이라는 사람이 경찰-검찰 갈등만 미봉하겠다는 생각으로….”

▼민정수석실에서 경찰 고위간부 인사에 제동을 걸었다고 들었다.

“엄청나게 갈등을 빚었다. 권 수석과 엄청 싸웠다. 하지만 결국 내 의지대로 인사했다.”

당시 경찰청장과 민정수석 사이에 빚어진 인사갈등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것이 황운하 당시 서울경찰청 형사과장(총경)의 경무관 승진 탈락이다. 이에 대해 조 전 청장은 “처음엔 황운하의 승진을 밀어붙였다가 나중엔 내 판단으로 미뤘다”고 말했다.

“민정수석실에서 황운하 승진을 반대하기에 내가 강하게 반발했다. 경찰 수사권 독립을 주장해온 사람이라고 뚜렷한 사유 없이 배제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승진을 시키는 쪽으로 분위기가 잡혔다. 임태희 비서실장과 정진석 정무수석도 내 뜻대로 하라고 했다. 그런데 경찰 안팎에서 서울 지역 경찰서장을 안 해본 사람이 경무관이 되는 건 인사질서를 해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내가 양보한 것이다. 대신 1년 뒤 꼭 승진시킬 테니 그때는 민정에서 이의제기하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경찰 수사권 독립의 상징적 인물인 황운하 경무관은 손꼽히는 수사통이다. 그는 2011년 서울 송파경찰서장을 거쳐 경찰청 수사기획관에 보임되면서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2012년 4월 조 전 청장이 물러난 후 그의 승진 속도는 더뎠고 ‘한직’을 맴돌았다. 지난해 연말 황 경무관(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 치안감에 오르지 못하자 그를 불편해하는 세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내년까지 승진하지 못하면 계급정년(6년)에 걸려 옷을 벗어야 한다.

▼황 경무관 외 다른 사례도 있나.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니 구체적으로 말하는 건 곤란하다.”

▼민정수석실에서 경찰 간부 인사에 관여하는 건 공직자 검증 임무가 있기 때문 아닌가.

“경찰도 내부적으로 감찰 자료를 바탕으로 다 점검한다. 민정에서 정말 공정하고 정확한 자료를 제시하면 참고했을 거다. 그런데 확인할 수 없는 내용으로, 누구는 된다, 누구는 안 된다 하니…. 그 때문에 정진영 민정수석(권재진 수석 후임)과 크게 싸웠다.”


박해윤 기자

“조폭에 10억 투자했다”


▼민정에서 내세운 승진 반대 사유는 어떤 것들이었나.

“투기를 했다는 둥 내부 여론이 안 좋다는 둥…. 내가 ‘민정 자료는 안 믿는다’고 하자 정 수석이 ‘민정수석실 존재를 부정하는 거냐’며 발끈했다. 민정에서는 심지어 경찰청장인 나에 대한 음해성 정보를 대통령께 보고하기도 했다. 내가 조폭 행동대장 나모 씨한테 10억을 투자해 월 2500만 원씩 배당을 받는다고. 정 수석에게 그 얘기를 하며 따지자 ‘내가 와서 한 일은 아니잖으냐’고 하더라.”

▼권재진 수석 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

▼어떻게 확인했나.

“청와대 파견 경찰관을 통해 그런 보고를 받았다.”

▼그것 때문에 대통령에게 경고 받았나.

“그런 일은 없었다.”

▼나씨와 모르는 사이인가.

“여태 전화 한 통 하거나 같은 공간에서 숨 쉬어본 적이 없다. 전혀 알지 못한다. 얼굴도 모른다. 내 아내가 금융다단계사업을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민정에는 이처럼 악의적 자료가 많았다. 내가 청장 그만둔 뒤 수원지검에서 내 아내 계좌를 전부 뒤진 적도 있다. 은행에서 통보해줘 알았다. 이유는 지금까지도 모른다.”  

그는 재임 중 형사소송법 개정이 이뤄진 데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형소법 개정으로 경찰이 수사개시권을 갖게 됐다. 경찰이 검찰에 대한 수사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김광준 검사를 뇌물수수로 구속하고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의혹 사건을 수사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덕분이다. 그간 검찰이 경찰 사건을 가로채간 게 얼마나 많았나. 이전까지만 해도 검찰은 경찰을 개 부리듯 했다.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어느 검사가 함부로 형사에게 ‘와라 가라’ 하나. 검사가 법적 근거나 공문 없이 전화로 지시하는 행태도 사라졌다.”

그는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의 수사구조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한국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비판했다. “검찰권력을 행사할 때 정치를 하려드니 문제가 되는 것 아니냐”면서.

▼본인 사건을 겪으면서 더 절실하게 느낀 것 같다.

“더 실감했다. 판사도 지적했지만, 협박과 회유로 증거를 조작하고 그걸로 기소를 하고 구형을 하고…. 경찰청장을 지낸 나도 이렇게 당하는데 일반 국민은 오죽하겠냐. 송 조합장 같은 경우 어떻게 보상을 받나.”


박해윤 기자

“절대권력은 부패한다”

▼경찰도 무고한 사람 잡은 적 많지 않나.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경찰은 그런 것에 대해 반성하고 조직 차원에서 고치려 많이 노력해왔다.”

▼수사역량이 떨어지고 통제가 안 되기 때문에 경찰에 독자적 수사권을 주면 안 된다는 게 그간의 검찰 논리였다.

“수사권과 수사지휘권, 기소권을 다 갖고, 협박과 회유로 증거를 조작하고 죄 없는 사람을 구속하는 검찰은 잘하는 건가. 그런 검사의 자질이 뛰어난 건가. 절대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수사 자질이 뛰어나다고 경찰에 수사권을 주나. 그렇지 않다. 수사권이 경찰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기소만 하라는 얘긴가.

“기소만 해도 된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나라가 많다. 경찰과 검찰이 각각 수사를 함으로써 견제와 균형을 갖추는 것도 괜찮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힘센 검찰이 경찰의 손과 발을 묶어 왔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부산지검 측은 “정씨가 조 전 청장에게 뇌물을 줬다고 일관되게 진술했고 자금원까지도 구체적으로 확인했으며 정씨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다수의 참고인 증언이 있었기 때문에 증거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는데 재판부에서 그 부분을 배척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권재진 전 민정수석 반론▼
“그런 얘기 왜 나오는지…대꾸할 가치도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권재진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조 전 청장의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민정수석 재임 시 조현오 경찰청장과 코리아나호텔 중식당에서 단 둘이 만난 적이 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조 청장에게 ‘수사권 언급하지 말라’고 경고하듯이 말했나.

“당시 대통령 지시로 경찰을 독자적인 수사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실제로 법도 개정됐고. 내가 경고할 처지도 아니었다.”

▼조 청장에게 “차명계좌 건으로 수사 받는 상황에서 수사권을 얘기하면 안 된다”고 말했나.  

“전혀 그런 사실 없다.”

▼그럼 무슨 얘기를 나눴나.

“기억나지 않는다. 청장 취임 후 상견례 차원에서 만난 것 같다. 격려하는 얘기를 해줬다. 특별한 얘기는 없었다. 얘기한다고 조 청장이 들을 사람도 아니고.”

▼경찰 간부 인사 문제로 충돌한 적이 있나.

“그런 적 없다. 다만 일부 인사의 경우 보안이 지켜지지 않아 그 경위를 알아본 적은 있다. 협의하기도 전에 언론에 보도됐기에 결정되지 않은 사항을 왜 외부에 흘렸느냐고.”

▼수사권 문제와 관련해 친정인 검찰 편을 들었다는 지적이 있는데.

“나는 대통령 뜻을 따라 중립적 시각에서 합리적 방안을 도출하려 애썼다. 결국 조 청장도 동의해 나중에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만들지 않았나. 그래놓고 지금 딴소리 하나.”

권 변호사는 ‘조폭 관련설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조 전 청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강하게 부인했다.

▼조 청장의 비리 정보를 대통령께 보고한 적 있나. 조폭과 관련됐다는 얘기를.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잘 기억해보라.

“전혀. 그런데 왜 그런 얘기가 나오나.”

▼조 전 청장 본인이 그런 주장을 한다.

“사실무근이다. 검찰 수사로 힘드니 자기가 피해자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것 같다. 내가 자기를 얼마나 보호하고 감싸주려 했는데….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대꾸할 가치초자 없다.”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