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1절 97돌]

1920년 경신참변(간도대학살) 당시 일본군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놓인 두 양민(위 사진).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 대패한 일본군 19사단 보병 75연대의 사진첩에 담긴 것으로 처음 공개됐다. 아래 사진은 일장기를 들고 부대로 들어가는 75연대 병사들. 김재홍 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제공
30여 년간 간도지역 사료 7000여 점을 수집한 김재홍 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최근 함경북도 회령에 주둔했던 일본군 19사단 보병 75연대가 독립군과 양민을 학살한 장면 등이 담긴 사진 수십 장을 공개했다. 김 사무총장은 1899년 북간도에 명동촌을 세운 선구자 중 한 명인 규암 김약연(1868∼1942)의 증손자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들은 김 사무총장이 200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았던 맹우열 씨로부터 구한 사진첩에 담긴 것으로 김 사무총장이 수년 전 그 존재를 일부 세상에 알렸을 당시에도 공개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사진 속 일본군의 학살 광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시신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비무장의 두 양민, 손이 뒤로 묶인 채 일본군에게 참수를 당한 시신의 모습 등이 그대로 담겼다. 특히 땅바닥에 널브러진 주검들을 구경하는 일본 군인들 옆에 간도 주민들이 서 있는 사진도 있다. 이들은 일본군에 의해 학살 장면을 보도록 강제로 끌려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독립군에 대패한 일본군, 무차별 보복학살 사진첩 만들어 제대군인에게 전리품으로▼
일본군 19사단 보병 75연대의 사진첩에서 발견된 사진으로 땅바닥의 시신은 독립군 혹은 1920년 간도대학살 때 일제에 의해 학살된 조선 양민으로 추정된다(위 사진). 아래쪽 사진은 1919년 3월 13일 만주 룽징의 독립만세 시위 부상자들을 치료했던 제창병원 의사와 간호사들로 사진첩과 별도로 수집된 것이다. 김재홍 사무총장 제공
사진첩에는 조선인 여성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여러 장 있다. 한복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한문 서예를 하는 여성, 물동이를 인 여인, 댕기머리를 한 처녀의 사진, 조선 미인(鮮美人)이라는 글씨가 쓰인 사진도 있다. 사진첩이 전리품 성격임을 감안할 때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김 사무총장은 이와 함께 만주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간도 명동촌, 룽징(龍井) 시의 1910, 20년대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도 다수 공개했다. 경신참변 시 일본군 방화로 불에 탔다가 재건된 명동학교, 조선은행 등 거리 풍경, 조선 독립운동가를 감시했던 일본총영사관 건물 등이다.
사진 외에 주요 사료도 여럿 공개됐다. 김약연이 당시 미주 대한인국민회 회장인 도산 안창호에게 하와이 군사학교의 훈련 매뉴얼과 교과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친필 서신, 명동학교에 많은 애국지사와 청년들이 몰려들어 공간이 부족해지자 증축을 위해 재정 지원을 요청하는 건축 의연금 위원 임명장 등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