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침실’(1888년)
서른일곱 짧은 생을 화가는 떠돌며 살았습니다. 스물네 개 도시, 마흔여 군데 잠자리를 전전했지요. 불편한 손님으로, 낯선 이방인으로 삶은 겉돌았습니다. 그런 삶이 뜻밖의 장소, 프랑스 남부 아를에 멈춰 섰습니다. 거처가 필요했지만 집 살 형편은 안 되었습니다. 남의 집 2층에 셋방을 얻었지요. 예산이 빠듯하다 보니 입지나 크기는 보잘것없었습니다. 하지만 의미만은 특별했습니다. 생애 처음 가져보는 자신만의 공간이었으니까요.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습니다.
안온한 침실이 생의 활기를 북돋았습니다. 독립적 공간이 작업의 몰입을 도왔습니다. 살짝 열린 창문가에서 예술가 협동조합 설립의 꿈을 꾸었을까요. 마주 놓인 두 개의 의자에 앉아 고갱과 날 선 예술 논쟁을 펼쳤을까요. 벽에 걸린 거울 앞에서 자신의 귓불을 자르는 소동을 일으켰을까요. ‘정신 치료를 받겠소!’ 나무 프레임 침대에 걸터앉아 출동한 경찰에게 이렇게 말했을까요. 참 많은 일이 있었던 아를의 침실은 석 점의 그림으로 남았습니다.
주거비 부담이 늘고 있다는 소식 때문일까요. 미술관의 값싼 하룻밤 숙박 이벤트에 쏠린 관심이 우리 시대 결핍의 풍경 같습니다.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에 흩어진 침실 그림을 한데 모은 반 고흐 특별전. 그림 속 단출한 세간의 침실이 다시 보입니다. 아를의 침실은 최소한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지속해야 할 삶을 위한, 화가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