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 음식평론가
조선시대 내내, 복어는 탈도 많고, 말도 많았다. 문제는 독(毒)이다.
성종 24년(1493년) 4월, 경상도 관찰사 이계남이 보고한다. 웅천(진해) 사는 공약명 등 24명이 굴과 생미역을 먹고 죽었다. 관찰사는 해물 채취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보고한다. 성종의 판단은 다르다. “굴과 생미역을 먹고 죽는 경우는 없다. 반드시 복어(河豚)를 먹었을 것이다. 해물 채취를 전면 금지하면 당장 바닷가 백성들이 굶을 것이다.” 우승지 한사문이 답한다. “복어가 굴에 알을 낳기 때문입니다. 이걸 먹었을 겁니다. 해물 채취를 금할 수는 없습니다.”
복어가 정쟁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숙종 조의 영의정 최석정(1646∼1715)은 소론 지도자로 8번이나 정승 자리를 오르락내리락할 만큼 당쟁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그는 ‘예기유편(禮記類編)’을 지었는데 ‘상례(喪禮)’ 등으로 시끄러웠던 시절이니 이게 화근이 되었다. 노론들은 “엉터리 내용인 ‘예기유편’을 불태우고 판본을 부수자”고 나섰다. 이 와중에 최석정이 복어 독에 중독되었다. ‘숙종실록’에는 같은 소론인 남구만(1629∼1711)의 안타까운 코멘트가 남아 있다. “세상에 쓸 책도 많은데 하필이면 ‘예기유편’이고, 세상에 먹을 것도 참 많은데 하필이면 복어인가?”
조선시대 기록에는 복어 독을 피하는 방법도 더러 나와 있지만, 과학적으로 복어 독에는 해독약이 없다. 조금씩 연습 삼아 먹으면 적응(?)이 된다는 말도 거짓이다. 아무리 연습해도 면역력은 나아지지 않는다.
교산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한강에서 나는 것이 맛이 좋은데 독이 있어 사람이 많이 죽는다. 영동(嶺東) 지방의 복어는 맛이 조금 떨어지지만 독은 없다’고 했다. 동해안산은 독이 없다는 말도 믿기 어렵다. 이규경도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복어, 복어 독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복어는 강과 바다에 사는 두 종류가 있다. 이름이 많다. ‘돈(7)’ ‘하돈(河7)’ ‘해돈(海豚)’, 속어로는 ‘물가치(勿家治)’ 혹은 ‘복(復)’이라 부른다. 눈이 가늘고 작다. 알에 독이 많은데 먹으면 죽는다. 예전부터 서시유에 비할 정도로 진미다.” 정식 명칭은 하돈(河豚)이고 복, 복어는 속명이었다.
복어 맛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이는 북송의 문장가 소동파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과 맞먹는 맛”이라고 했다. 조선후기 문신 서영보(1759∼1816)는 ‘죽석관유집’에서 ‘복사꽃이 무수한 계절에 미나리, 참깨 맛이 그리워라. 이제 복어 계절을 또 보낸다’고 아쉬워했다.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해답은 ‘규합총서’에 있다. ‘비늘 없고, 배가 팽팽하며, 이를 갈고, 눈 감았으며, 소리를 내는 생선은 독이 있다. 복어는 이 다섯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 진미이니 먹지 않을 수는 없다. 복어 배 속에 가로, 세로 핏줄이 많다. 일일이 제거하고 몇 번을 빨아서 핏물을 없앤다. 기름을 많이 붓고 간장과 미나리를 넣어 끓인다. 곤쟁이젓갈도 복어 독을 푼다.’
황광해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