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 ‘프로듀스 101’… ‘국민 프로듀서’를 제거하라
“양계장 같아요. 독감 예방주사 맞으면서 괴로워하는 소녀들, 계체량 거쳐 ‘몰카’ 앞에 서죠. 어쨌거나 재미는 보장. 전, ○○가 제일 좋아요.” 이렇게 말하던 박성종(가명·44) 씨는 문득 한 차례 몸서리쳤다. “근데 담에 우리 수진이(11·딸) 나간다고 하면… 어떡하지?”
101명의 출연료는 다 합쳐 0원. 출연자들은 방송 편집분에 대한 어떤 이의나 법적 청구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계약서를 썼다. 매회가 끝날 때쯤 진행자 장근석은 전 출연진의 배꼽인사를 독려한다. “자, 우리 프로듀서님들께 인사!” “(일동 카메라를 보며) 국민 프로듀서님, 잘 부탁드립니다!!!”
○ 단서 1: 연습생 소속사의 말
살해라니. 번뇌가 일었다. ‘본노가르즈(번뇌걸스)’가 떠올랐다. 2005년 일본. 108명의 여성 멤버로 결성된 전설의 걸그룹. 팬 총선거로 핵심 멤버를 정하는 AKB48을 여기 섞은 게 101의 콘셉트다.
군소 기획사들은 그럼에도 회사 내 여성 연습생을 총동원해 101에 투입했다. ‘올인.’ A기획사 대표의 목소리에 번뇌가 묻어 있었다. “거기(101)만 다녀오면 아이(연습생)들이 풀 죽어 있어요. 몸보다 맘이 더 힘들대요. 순위 발표, 스토리 편집, 경쟁…. 명색이 대푠데 전 방송 잘 안 봐요. 애들한테 제가 무슨 짓을 한 건지….”
B기획사 이사는 101 아니라 1001에라도 연습생을 출전시키겠다고 했다. “다음 작품은 남자 버전이겠죠. 제작비는 대형 기획사의 20분의 1도 못 쓰는, 상장도 안 된 우리 회사 아이들한테 그나마 이 기회가 어디예요. × 같죠. 근데 로또 같죠. 쓴데 좋다면 삼켜야죠.”
○ 단서 2: 10대 101명의 시각, 성-연령대별 시청률
거리를 배회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우리는 조사업체(엠브레인)와 함께 101을 본 643명에게 물어봤다. 뜻밖에 이 프로에 대한 긍정적 시각(58%)이 많았다. 특히 이 프로를 부정적으로 보는 10대는 40% 미만이었다. 또래들의 피학을 즐긴단 말인가? 이것은… 외계문명?
CJ E&M을 찾아갔다. “자, 6회 성-연령대별 시청률을 볼까요. 10대 여성이 가장 높아요. 이어 20대 여성, 30대 여성…. 여자들이 보는 프로그램이라고요!”(CJ E&M 관계자)
제1 용의선상에 시커먼 삼촌 팬들을 뒀건만…. 모든 전제가 흔들렸다. 도대체 왜 여자들이…? “중년 남성이 대놓고 거실 ‘테레비’로 그걸 보겠어요? TV 시청률에 속지 말라고요.”(B일간지 C 기자)
○ 단서 3: 연옥서 내려다본 잠깐의 천국 혹은 지옥
우리가 만난 643명의 국민 프로듀서는 20대, 30대로 올라갈수록 101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약해졌다. “면접 가서 ‘왜 날 뽑아야 하나’를 말하는 것과 춤과 노래로 ‘Pick Me’(101 주제곡)를 외치는 게 무슨 차이인가요? 동질감에 보는 겁니다. 국민 프로듀서를 죽이지 마세요.”(김헌식 문화평론가)
우린 연민을 느꼈고 거울을 향해 들었던 총구를 천천히 내렸다. 두 요원은 피폐해진 심신을 끌고 서울 강북의 부촌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회에 계속)
임희윤 imi@donga.com·김윤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