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기호 소설가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그는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그는 한 교통사고 취급 전문 로펌에 소속되어 있는 변호사였다. 보험회사를 상대로 교통사고 피해자들의 위임을 받아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그의 주된 업무였다. 사망 사고는 7%, 일반 부상은 10% 하는 식으로 그는 보험회사로부터 받아내는 보상비의 일부를 수임료로 받았다. 교통사고는 매일 끊임없이 일어났고, 원만하게 합의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도시락을 먹어가며 교통사고 사실확인원이나 신체감정서를 들여다보며 피고답변서를 준비했다. 의뢰인에게 화해권고를 받아들일 것을 전화로 종용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자정을 훌쩍 넘기는 때가 많았다. 그러면….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남들 남편보다 많은 월급을 가져다주면, 고마워하고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이건 무슨 옆집 강아지 대하듯 말 한 번 따뜻하게 건네는 법이 없으니…. 그저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 아들 하나만 금이야 옥이야 하고 앉아 있으니…, 그는 괜스레 위축됐던 마음을 풀어보려고 길게 호흡을 한 번 했다. 그리고 집 현관문을 열었다.
심방은 다 함께 찬송가를 부르고, 담임목사의 축복 기도를 받고, 성경 말씀을 듣는 순서로 이루어졌다. 그는 아내와 아들 사이에 앉아 경건하게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불렀다. 힐끔힐끔 아내의 얼굴을 살폈으나,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별다른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제가 이렇게 심방을 하면 제 기도만 하는 게 아니고,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기도를 듣는 시간을 꼭 갖습니다. 그래야 저도 성도님들의 어려움을 알고 함께 기도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김승우 어린이 먼저 기도를 하고, 그 다음에 김성철 성도님, 이정은 집사님 순서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담임목사가 그렇게 말하자 장로와 안수집사가 먼저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어리둥절 자신들을 쳐다보는 아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그의 아들은 잠시 주눅이 든 표정을 짓더니 두 눈을 감고 소리 내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주님, 그럼 제 소원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소원은…. 이 땅에서 특목고와 자사고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특목고와 자사고 때문에 작년부터 영어와 수학 과외를 받았습니다. 내년부터는 스펙을 쌓기 위해서 과학경시대회도 나가야 한답니다. 그거 때문에 과외도 또 하나 늘었습니다. 일반고에 들어가면 대학도 다 끝이라고 엄마가 말했습니다. 이 땅의 많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특목고와 자사고 좀 꼭 문 닫게 해주세요…. 주님, 그리고 엄마와 아빠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각방을 쓰지 않게 도와주세요. 엄마는 아빠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싫다고 하십니다. 아빠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합니다. 주님, 아빠 일이 줄어들도록 교통사고 사망자가 많이 늘어나게 해주세요. 그래야 아빠 일이 깔끔해진다고,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아빠가 돈도 더 많이 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우리 아빠와 엄마를 위해서 교통사고 사망자가 더 많이….”
그의 아들은 기도를 하다가 끝내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그는 감고 있던 눈을 떠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내와 그의 눈이 아들의 머리 위에서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