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통감은 덕과 공로가 높고 학문은 고금을 통달하였으며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실로 크게 떠받들고 지탱하여 준 공로가 있기에 짐은 언제나 존중하는 사람이다.”(순종실록 1907년 11월 19일) 순종이 이토를 태자태사로 임명해 영친왕 교육을 맡기고 황족인 친왕(親王)으로 예우하겠다며 한 발언이다. 1905년 을사늑약 후 국권을 빼앗기면서도 왕이 그런 생각을 했으니 대신들이라고 침략의 원흉에 감히 맞섰겠는가.
▷이토가 초대 한국통감으로 서울에 온 것은 꼭 110년 전인 1906년 3월 2일이었다. “조선을 독립국으로 승인해야 한다고 처음 말한 사람은 바로 본인이다. … 일본은 한국을 합병할 필요도, 그런 생각도 없다….” 부임 직후 ‘제1회 한국시정에 관한 협의회’에서 그는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았지만 당시 지도층은 도로망과 교육시설 건설 등 그가 내보인 당근에만 관심을 쏟았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이토 처단에 대해 고종과 순종의 탄식을 전한 일본 기록을 보면 배신감이 들 정도다. 망국엔 다 이유가 있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