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등 K-모피 브랜드, 세계 최고의 퍼를 낙찰받다
1 2월 1일 캐나다 토론토 나파 본사에서 열린 블랙피메일밍크 옥션. 2 나파의 블랙피메일밍크는 최고의 럭셔리 퍼로 유명하다. 3 나파의 마이클 D.맹거 CEO가 최고의 모피인 ‘톱 로트’를 낙찰받은 한국 진도모피의 임병남 전무(가운데), 한성훈 부장에게 기념패를 전달했다.肠돪蒝꒘냪邊鷫₼뛫낂闭ₜ
진도 등 K-모피 브랜드,세계 최고의 퍼를 낙찰받다“솔드(낙찰)!”
“축하합니다!”
나파가 후원에 참여한 아시아 모피 디자인 콘테스트(왼쪽)와 서울석세스어워즈 패션쇼(가운데). 나파의 마이클 D.맹거 CEO가 김동성 DS모피 대표에게 ‘톱 로트‘의 기념패를 전달하는 모습.
고급 모피 제품에 상품 브랜드와 나란히 붙어 있어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나파’란 라벨은 정확히 말하면 ‘나파 경매’를 통해 거래된 정품의 북미산 모피를 의미한다. 소재의 원산지와 품질을 증명하는 브랜드인 셈. 현재 모피는 전 세계적으로 헬싱키와 코펜하겐, 토론토 등 3곳의 경매를 통해서 유통된다. 토론토에서 진행되는 나파는 1670년 세계 최초의 모피 무역 회사에서 시작한 경매로, 긴 역사를 통해 세계 최고 품질의 밍크인 블랙 나파(BLACK NAFA)를 최상의 럭셔리 퍼로 알리며 명성을 쌓아왔다.
1월 30일에서 2월 4일까지 열린 올해의 첫 번째 경매에는 전 세계에서 모인 바이어들과 근화, 동우, DS, 성진, 우단, 윤진, 진도, 태림 등 한국의 모피 브랜드 10개 업체가 참석해 최상의 소재를 최선의 가격에 낙찰받기 위해 뜨거운 경쟁을 벌였다. 바이어들은 경매 시작 전 거대한 창고에 마련된 모피 샘플을 눈과 손으로 일일이 검사해 색과 품질을 확인하고, 원하는 제품이 경매에 부쳐지면 가격 경쟁을 통해 구매한다. 구매 단위는 평균적으로 옷 한 벌을 만들 수 있는 25장이며, 이를 1로트(lot)라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검수 과정에서 바이어들이 최고의 품질이라고 평가한 모피에 직접 투표한 결과에 의해 1등인 ‘톱 로트’가 선정된다는 것. 소수의 심사위원이 점수를 주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경매에 참여해 전문적 안목을 지닌 바이어들이 가장 탐나는 원피를 직접 뽑고, 가격 경쟁을 통해 마지막 승리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서구 농업과 목축업에서 생산자들과 상인들이 함께하는 ‘박람진흥회’의 전통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나파에서는 낙찰자에게 톱 로트 기념패를 증정하는 등의 이벤트도 열어준다. 나파의 한 시즌 경매에서 소재와 컬러별로 단 하나씩, 단 8개의 톱 로트가 선정된다. 이번 경매에서 진도모피가 블루아이리스 피메일, DS모피가 사파이어와 바이올렛 등 톱 로트 3개를 낙찰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이 세계 모피 패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경매 현장에서 톱 로트는 경매의 수준을 보여주는 기준이자 상징이 된다. 당연히 모든 바이어들의 목표가 된다. 경매 시작가 자체도 높지만 경쟁자들이 계속 가격을 높여 입찰하므로 나파를 대표하는 블랙 피메일 밍크의 경우 낙찰가가 일반 밍크의 10배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톱 로트로 만든 옷이 한 해 2~3벌 정도 제작됩니다. 워낙 고가라 톱 로트를 구매한 모피 브랜드에서도 실제 판매보다 ‘상징성’을 염두에 둡니다. 톱 로트 제품을 전시하거나 VIP들에게 공개하여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죠.” (한성훈 진도모피 부장)
한국 모피 산업에서 사관학교라 할 수 있는 진도모피에서 수출을 담당했던 김동성 DS모피 대표는 “1980년대 세계 최대의 밍크 수출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이제 모피를 수입한다”며 아쉬워했다.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한국 모피 패션의 품질은 세계 최고입니다. 모피는 다른 패션 소재보다 훨씬 비싸서 디자이너들이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보온성보다 패션성 때문에 모피를 입는 사람들이 늘어난 요즘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이너가 부족하다는 점이 한국 모피 패션의 약점이 됐죠. 또 모피를 다루는 전문 기술과 오랜 경험을 갖춘 인력은 인건비가 비싸서 세계 시장에서는 저가 중국 모피에 밀리고 있지요.”
경매장에서 중국 바이어들은 톱 로트 한 개와 저가 모피를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라고 한다. 톱 로트는 홍보용이고, 모피의 자연색을 선호하기보다는 저가 모피를 구매해 까맣게 염색한 스타일이 잘 팔리기 때문이라고.
나파 측은 한국 모피 패션 브랜드들이 깐깐한 안목으로 최고급 모피 경매를 주도한다는 점이 소비자들에게도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 나파 옥션에서 한국으로 오게 된 톱 로트는 한국 모피 브랜드들의 수준과 자신감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 톱 로트를 소재로 한 ‘꿈의 모피’는 올가을에 만날 수 있다.
세계 모피 3대 옥션 중 하나인 나파는 1670년 시작했다. 나파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들(위). 컬러와 밀도, 회복력 등을 평가하는 바이어(왼쪽).
나파 옥션에 참가한 한성훈 진도모피 부장
진도는 나파 옥션에서 단일 회사로는 최대 고객이다. 올해의 첫 번째 옥션에서도 진도는 블루아이리스 ‘톱 로트’를 낙찰받았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꼬박 경매장을 지킨 진도의 한성훈 상품기획팀 부장은 15년 동안 전 세계 모피 옥션에 참여해온 ‘모피 사나이’다.
패션 소재를 경매로 거래하는 모습이 독특합니다.
“3백 년 전 신대륙에서 모피를 가져다 유럽에서 경매로 판 상인들의 전통이 남아 있어서겠죠. 예전엔 엄격히 정장을 입는 등 유럽적 매너가 강했어요. 미국과 중국 덕분에 많이 캐주얼해졌죠.”
여기서도 중국이 변화의 중심이네요.
“한국이 고가에 집중하는 데 비해 중국은 저가 중심이라 옥션은 한국이 주도해요. 중국에서 낙찰받았다가 안 산다는 경우도 있고, 경제 상황에 따라 엄청나게 사들였다가 최근 갑자기 구매량을 줄여버려서 많이들 당황하죠.”
대부분 ‘선수’일 텐데, 생각보다 다들 긴장한 모습이에요.
“옥션은 살아 있는 유기체 같아서 가격이 수요와 공급으로 정해지니 계속 긴장하지 않으면 원하는 걸 제 가격에 얻을 수 없으니까요. 이보다 깨끗한 거래는 없어요. 꼭 원하는 모피가 있다면 돈을 더 내면 얻으니까요.”
진도가 세계 모피 패션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진도처럼 한 모피 회사가 1백 개 매장을 가진 경우가 없으니 최대 규모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진도는 모피 품질과 수준에서도 세계 최상위에 속하죠. 물량은 중국이 많지만, 고급 시장에선 한국이 절대적으로 앞서 있어요.”
여성동아와 만난 로버트 카힐 Robert B. Cahill 마케팅 수석 부사장
올해 첫 번째 경매 현장 이곳저곳을 오가느라 부산한 로버트 카힐 마케팅 수석 부사장에게 모피 패션을 표지에 담은 지난해 12월호 여성동아를 선물하자 “아름답다!”를 연발했다.
한국과 한국 여성에 대해 잘 알고 있나요?
“시장 조사를 위해 한국을 자주 가고, 늘 백화점에 들릅니다. 여성동아의 이 화보에서 보듯 한국 여성들은 우아한 멋을 낼 줄 압니다.”
모피 경매 회사로서 나파의 특징은?
“무엇보다 고품질 모피를 다룬다는 점이죠. 특히 블랙 나파 밍크는 짧고 밀도가 촘촘해 최상의 럭셔리한 소재로 유명해요. 그래서 나파는 스타 마케팅보다 각 브랜드의 성격을 강화하는 마케팅에 집중합니다.”
올해 첫 번째 옥션은 어떤가요?
“세계적인 불경기의 영향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한국 바이어들은 모두 참석했고 고급 퍼의 경매를 주도해서 나파로서는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안티 퍼’ 운동이나 다운(패딩) 같은 강력한 경쟁자는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요?
“나파는 동물 복지를 위한 교육과 홍보에 애쓰고 있습니다. 와일드 퍼도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는 수준에서 공급하죠. 모피는 축산 농가의 생업이라 사실 이곳에서 ‘안티 퍼’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다운은 모자와 안쪽에 모피 장식을 더하는 디자인이 많아 젊은 사람들이 모피를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도움이 되고요.”
미래의 모피 트렌드를 전망한다면?
“와일드 퍼의 비중이 커지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컬러풀한 퍼를 즐길 겁니다.”
모피 패션의 발전을 위해 나파가 가장 집중하는 사업은?
“‘스튜디오 나파’라는 프로그램입니다. 디자인 경쟁 대회를 열어 각국에서 선발된 디자이너들이 나파에서 연수하며 모피 소재를 많이 다뤄볼 수 있게 합니다. 또 나파 와일드 퍼 컬렉션도 선보이고 있어요. 이 모든 활동은 디자이너들이 모피를 통해 크리에이티브한 영감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글&사진 · 김민경 기자 | 사진제공 · NAFA | 디자인 · 최정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