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경영 끝내고 재계 첫 4세경영
두산그룹의 차기 회장에 오르게 될 박정원 회장 앞에는 만만치 않은 숙제들이 놓여 있다. 두산그룹은 몇 년 전부터 주력 기업인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건설의 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신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그의 과제다.
○ 결정적 순간 ‘승부사’ 기질 발휘
그동안 두산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형제간 우애를 기반으로 해왔다. 2005년 박용성 회장이 취임할 때 박용오 회장이 반발해 동생을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고발한 ‘형제의 난’을 겪었지만, 두산그룹 형제들은 인사에 반발한 고 박용오 회장을 가문에서 퇴출시키는 강수로 대응했다.
박정원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1985년 두산산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지 31년 만에 그룹 회장직에 오르게 됐다. 2012년부터 두산그룹의 지주회사인 ㈜두산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두산건설 회장, 두산베어스 구단주를 겸임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은 외유내강형이지만 결정적인 순간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1999년 ㈜두산 부사장으로 상사BG를 맡은 뒤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사업 위주로 과감히 정리해 취임 이듬해인 2000년 매출액을 30% 이상 끌어올리기도 했다. ㈜두산 지주부문 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2014년 연료전지 사업, 2015년 면세점 사업 진출 등 그룹의 주요 결정 및 사업 추진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두산그룹은 박 회장이 그동안 정기적으로 사촌 모임을 주도하는 등 가족 신망이 높은 편이어서 향후 ‘사촌경영’도 잘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재무구조 개선 등 산적한 과제 많아
두산은 1896년 서울 배오개시장(현 종로4가)에 문을 연 포목상 ‘박승직 상점’을 시초로 하는 국내 최고(最古) 기업 중 하나다. 두산은 1990년대 이후 OB맥주와 음료·주류, 의류, 전분당 사업 등 소비재 부문을 모두 매각하고 한국중공업과 고려산업개발, 대우종합기계, 밥캣 등을 인수하며 중공업 중심으로 구조를 바꿨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세계 경기 침체로 건설과 건설장비 사업이 타격을 입었다. ㈜두산은 지난해 별도 기준으로는 2134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그룹 전체로는 1조7000억 원의 순손실을 냈다. 최근에는 ㈜두산과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의 신용등급이 일제히 떨어졌다.
박정원 회장이 취임 후 가장 주력해야 할 과제는 재무구조 개선이다. 두산그룹은 2일 MBK파트너스와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 사업부문 매각 협상을 마무리해 1조1308억 원을 확보했다. 연내 두산밥캣을 국내 증시에 상장하고 방산업체 두산DST의 매각 작업이 마무리되면 3조 원 가까운 자금을 수혈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길게는 20년간 그룹을 이끌어갈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도 박 회장 앞에 놓인 과제다. ㈜두산은 상반기(1∼6월) 서울 중구 두산타워에서 시내 면세점 사업을 시작하며 다시 소비재 영역에 발을 들인다. 연료전지사업은 2년 만에 수주액이 5870여억 원으로 증가했다.
신수정 crystal@donga.com·정민지·강유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