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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 후보 vs 아웃사이더… 美대선, 가지않은 길을 간다

입력 | 2016-03-03 03:00:00

[힐러리-트럼프 ‘슈퍼 화요일’ 압승]
민주 힐러리, 본선 진출 위한 대의원 표 절반 가까이 확보




‘마이너리티(minority) 유권자들이 힐러리의 승리를 만들었다.’

뉴욕타임스가 1일(현지 시간) 민주당 ‘슈퍼 화요일’ 경선 결과를 보도한 기사의 제목이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69)의 대승에 대해 “슈퍼 화요일 경선은 남부 백인 지지층에 흑인과 히스패닉의 표를 결합시킨 ‘힐러리 맞춤형 승리’”라며 “그는 11월 본선에서 다양한 인종의 유권자들을 전국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인종 평등’ 공약으로 유색 인종에게 다가선 것이 백인과 젊은층에 지지층이 집중돼 있는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5) 열풍을 잠재우는 데 주효했다는 것이다.

클린턴은 865명의 대의원이 걸려 있는 이날 경선에서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역구인 버몬트 등 4개 주를 제외한 8개 지역에서 승리해 450명이 넘는 대의원을 확보했다. 특히 유색인종 비율(히스패닉 38%, 흑인 11%)이 높으면서도 이날 경선에서 가장 많은 대의원(222명)이 배정된 텍사스에서 65%를 득표해 이곳에서만 122명의 대의원을 쓸어 담았다. 흑인 비율이 31%(미 평균 13%)나 되는 조지아에서도 71%를 얻어 102명의 대의원 중 66명을 확보했다. CNN은 “전체 경선의 25%가 진행됐지만 힐러리는 승리를 위해 필요한 2383명의 대의원 중 절반을 이미 확보했다”며 “승부의 추는 기울었다”고 보도했다.

클린턴은 승리 연설에서 본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큰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70)를 향해 날을 세웠다. ‘미니 슈퍼 화요일’(15일) 경선 지역인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행한 연설에서 “미국은 한쪽만 바라보는 사람의 나라가 아니다. 미국을 ‘우리’와 ‘저들’로 구분하는 (트럼프의) 시도는 잘못된 것”이라며 트럼프를 정조준했다. 또 “장벽을 없애고, 기회와 격려의 사다리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미-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을 겨냥한 것이다.

클린턴은 이날 오전 미네소타 주의 투표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의 아킬레스건 가운데 하나인 백인우월주의단체 KKK와의 연루설을 이용해 공세를 퍼부었다. 그는 “트럼프가 KKK 전 지도자인 데이비드 듀크의 지지를 거부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바로 거부하지 않았다”며 “나는 (인종차별적) 편협을 단호히 반대하며, 다른 국민에게도 똑같이 하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지난달 28일 CNN 인터뷰에서 “듀크의 지지를 거부하고 백인우월주의자들과 거리를 두겠느냐”는 질문에 “무슨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얼버무린 것을 언급한 것이다.

클린턴은 트럼프와의 가상 대결에서 줄곧 우위를 지키고 있다. 최근 발표된 5번의 가상 대결 여론조사 결과 가운데 4개 조사에서 트럼프에게 1∼8%포인트 앞섰다. 지난달 15∼17일 USA투데이 조사에서만 45% 대 43%로 지는 것으로 나왔다.

트럼프가 아닌 테드 크루즈(46),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45)과의 가상대결에서는 밀리는 조사 결과가 많아 클린턴 캠프는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 공화 트럼프 “나는 통합주의자” 본선 겨냥 이미지 변신 시도 ▼


“나는 통합주의자다.”

1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플로리다 주 팜비치의 최고급 리조트인 ‘마어라고 클럽’. 리조트 소유주이자 ‘슈퍼 화요일’ 경선 주 11곳 중 7곳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70)가 승리 기념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공화당 지도부가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45)을 내세워 당신을 끌어내리려 하는데 대책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평소 같으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그들은 형편없는 인간들”이라고 쏘아붙였을 트럼프가 조용한 목소리로 의외의 답을 내놓자 회견장은 웅성거렸다. 트럼프는 “나는 더 크고 강한 공화당을 만들 수 있다. 당의 경계가 넓어져야 대선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69)을 이길 수 있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이날 회견은 공화당 경선에서 승기를 잡은 트럼프가 본선 모드로 전환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경선 내내 충돌했던 공화당 지도부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며 2, 3위 후보 간 단일화를 통해 자신을 막으려는 시도에 물 타기를 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자신의 대선 후보 지명을 불안해하는 공화당을 겨냥한 ‘정치적 표변(豹變)’으로 풀이된다.

그는 평소 하지 않던 말을 쏟아냈다. “지난해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고 하더니 “지금 나는 선거운동이라기보다 (정치를 바꾸기 위한)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내가 경선에서 이긴 주를 한번 봐라. 뉴햄프셔, 사우스캐롤라이나, 네바다, 그리고 조지아…. (내가 대선에 참여한 뒤) 공화당은 민주당에 없는 큰 에너지를 갖게 됐다. 나는 상식을 가진 보수주의자”라고도 했다. “오늘 승리로 대선 후보가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엔 “(정치를 하면서) 나도 외교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CNN은 이 장면을 생중계하며 “트럼프가 공화당을 통합시킬지는 알 수 없지만 본선에 대비하기 위해 발 빠르게 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해 출마 선언 직후부터 “미-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으로 대선 정국을 ‘트럼프판’으로 만들어버린 그의 승부사 기질이 다시 나온 것이다.

클린턴에 대해선 어느 때보다 강력한 돌직구를 날렸다. 그는 “e메일 스캔들 등으로 얼룩진 클린턴이 대선 레이스에 계속 나오는 것은 가당치 않고 자격이 없다” “클린턴이 대선 후보가 된다면 아주 슬픈 날이 될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공화당 일각에선 “이제 그를 인정하자”는 분위기도 역력하다. 이날 회견 진행은 경선 과정에서 앙숙이었으나 최근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54)가 맡았다. 그는 “미국을 변화시킬 리더십을 유일하게 갖춘 차기 미국 대통령”이라고 트럼프를 소개했다. 트럼프는 최근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앨라배마)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릭 스콧 플로리다 주지사도 조만간 지지를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등을 지원했던 공화당의 핵심 외교 전문가들 중 일부도 조만간 트럼프 캠프로 이동해 그의 대선 공약 개발에 참여할 계획”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