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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진짜 내 이름을 찾을 수 있을까요?

입력 | 2016-03-05 03:00:00

◇소녀, 히틀러에게 이름을 빼앗기다/마샤 포르추크 스크리푸치 지음/백현주 옮김/216쪽·1만1000원·천개의바람




기억이 조각조각 납니다. 군인들에게 쫓기던 긴박함, 할머니와 언니가 함께 먹던 멀건 수프의 냄새, 분홍 드레스를 입었던 저택에서의 식사, 누군가에게 납치될 때 남아 있던 책상 위의 사탕 두 알, 히틀러 앞에서 진정한 아리아 소녀의 모습이라며 받았던 칭찬, 차창 밖에 나타난 자신을 닮은 소녀, 그리고 손목에 찍혀 있는 검은 점.

현재의 이름은 ‘나디아’입니다. 난민캠프에서 만난 아줌마가 붙여주었습니다. 난민 자격으로 캐나다에 왔습니다. 독일어, 우크라이나어, 이디시어, 러시아어가 아닌 영어를 배워야 합니다. 다른 말을 배울 때의 아픈 기억이 납니다. 어디론가 납치된 후, 독일어를 쓰지 않으면 작은 방에 감금되었습니다. 다섯 살이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으로 기억은 연속성을 가지지 못합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레첸 힘멜’이라는 독일 이름, 그렇다면 나는 나치였던 걸까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아리아인의 수를 늘리기 위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금발 머리에 눈이 파란 8세 미만의 아이들을 납치합니다. 그리고 독일인으로 세뇌 교육을 했죠. 이를 ‘레벤스보른’이라 합니다. 이 책은 그 아이들 중 한 명인 나디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과정을 그려냅니다.

그 과정에 서두르지 않고 옆에서 기다려주는 어른들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너는 우크라이나인이라고 기억을 빨리 찾으라고 다그쳤다면, 나디아의 기억은 더 흩어졌겠죠. 아픈 기억 속에서도, 그 기억을 딛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이 성장입니다. 역사적 사건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한 아이의 성장 과정에 더욱 눈길이 가도록 한, 세련된 구성이 돋보입니다.

김혜원 어린이도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