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통합 카드는 꽃놀이패… 총선 패배면 文·安 분열 때문 이기면 김종인 功이 될 것… 친노패권주의 끝장낸다면 시대착오적 ‘햇볕’ 신봉하는 친노수장 대선후보 가당한가 야당에 대통령감 없는 지금 정치를 아는 리더가 필요하다
김순덕 논설실장
박근혜 대통령의 개성공단 폐쇄 조치를 놓고 문재인이 ‘페이스북 정치’를 재개한 2월 14일은 마침 김종인이 구원투수로 더민주당에 들어온 지 꼭 한 달 되는 날이었다. 그 사이 김종인은 당을 완전 장악했다. 첫 비대위 회의에서 “아직도 과거의 민주화를 부르짖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일갈해 친노(친노무현) 친문(친문재인) 세력의 혼을 빼놓더니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에서도 이들 주류세력을 빼버린 건 시작에 불과했다.
김종인이 인터뷰 족족 “내가 얼굴마담이나 하려고 왔는지 아느냐” “친노패권주의가 있다고 한들 그들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있겠나” 하고 돌직구를 던지는 바람에 친노 원성이 경남 양산까지 들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북의 장거리 미사일 도발 뒤 김종인의 북한 궤멸 발언이 문재인을 자극했는지는 알 수 없다. 백의종군하겠다며 칩거하던 그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커밍아웃’한 사안이 대북(對北) 문제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김종인의 더민주당을 보면서 요즘 나는 정치가 이런 거구나, 리더십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 재미가 난다. 그는 정치란 국민이 느끼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1972년 10월 유신 이후 한국 정치가 쪼그라들고, 리더는 나라를 어떻게 이끌겠다는 확신도 없이 덜컥 당선돼 우리나라가 이 지경이 됐다며 해답도 거침없이 내놓는다. 공부도 없는 사람이 대통령 돼도 문제지만 야당도 정국을 이끌고 갈 수 있다는 걸 김종인이 보여주고 있다. 지난 주말 그가 제안한 ‘야권 통합’은 되면 좋고, 안 돼도 상관없는 김종인의 꽃놀이패였다.
총선에서 여소야대(與小野大)를 이뤄내려면 통합이나 연대가 불가피하다는 정도는 안철수도 모를 리 없다. 그는 대통령 후보 자리가 어른거려 죽어도 철수(撤收) 못하겠지만 김종인으로선 할 도리를 다 했다. 통합이 되든 안 되든 4월 13일 더민주당이 패배하면 책임은 안철수와 문재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야권을 분열시킨 건 그들이기 때문이다. 승리하면? 당연히 김종인의 공로다.
나이 77세를 강조해온 그가 드디어 “킹메이커를 하려면 킹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야당에는 대통령감이 안 보인다” “나는 부(副)대장보다는 대장 체질인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노상 국회만 탓하고, 경제는 점점 나빠지는 상황에서 국민도 ‘일을 되게 하는’ 리더에 목말라 하고 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다는 거다. 왜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 김종인이 빠져 있는지를.
2010년 ‘문제는 리더다’ 책에서 정관용이 농담이라며 “대통령이 되면 총리로 누구를 모실 생각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김종인은 늘 그렇듯 직설적으로 답했다. “총리는 필요 없다. 예산 낭비다.” 그러면서 1959년 혼란스러웠던 프랑스 국민의 마음을 다잡아주고 프랑스의 영광을 되찾아 준 드골 같은 대통령이 나와서 국가 도약의 기반을 닦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꼭 자기 자신 같은 독불장군을 뛰어난 리더로 꼽은 셈이다.
결국 제1야당이 살아날 길은 하나뿐이다. 시대착오적 좌파 근본주의를 청산해내면 이미 커밍아웃한 친노패권주의 수장 문재인은 맡겼던 당을 찾지 못할 것이다. 상상만 해도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같지 않은가.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