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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사치 아닌 가치의 시대… 디자인이 곧 명품”

입력 | 2016-03-07 03:00:00

Case & Interview: 프리미엄 핸드백 브랜드 ‘덱케’의 성공 이끈 윤현주 한섬 상무




윤현주 한섬 잡화사업부장(상무)은 직원들에게 유명 디자인 전시회나 미술관 등을 방문하면 반드시 이런 공간과 어우러진 덱케 제품 사진을 찍어 각자의 인스타그램에 올리게 한다. 그는 이를 “궁극적인 럭셔리인 예술공간의 힘을 빌려 덱케가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백화점을 주요 유통 채널로 삼고 있는 프리미엄 패션 브랜드들의 고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타임, 마인, 시스템 등의 브랜드를 거느린 패션업체 ‘한섬’의 선전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4분기(10∼12월) 전년 동기 대비 우리나라 백화점의 의류 판매금액은 마이너스(―2%)를 기록한 반면 한섬의 연결재무제표 기준 매출액(2234억 원)과 영업이익(306억 원)은 각각 21.3%, 34% 신장했다. 실적 성장의 주 요인으로는 압도적인 브랜드 파워와 디자인의 힘이 꼽힌다.

한섬의 선전 배경에는 이 업체가 현대백화점그룹에 인수된 이후 약 1년간의 개발 기간을 거친 뒤 2014년 3월 내놓은 핸드백 브랜드 ‘덱케’ 역시 한몫을 했다. 한섬이 6년 만에 처음 내놓는 이 신규 브랜드는 2015년 24개 매장을 통해 13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2016년 35개 매장에서 250억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한섬에 합류하기 전까지 국내 잡화 브랜드 ‘쿠론’에서 디자인실장을 맡으며 이미 한 차례 ‘K패션(한국발 패션브랜드)’의 가능성을 보여준 윤현주 한섬 잡화사업부장(상무)에게서 덱케의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을 들었다. 인터뷰 전문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96호(3월 1호)에 실려 있다.

―덱케는 한섬이 수입 또는 라이선스가 아닌 자체 브랜드로는 6년 만에 선보인 브랜드다. 한국의 패션을 가리키는 ‘K패션’ 잡화 브랜드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나.

“덱케는 프리미엄군, 그중에서도 최근 인기를 끄는 ‘컨템포러리’ 장르를 염두에 둔 브랜드다. 컨템포러리는 기존 명품보다 가격대는 낮지만 일반 브랜드보다 개성 있고 고급스러운 브랜드를 뜻한다. 의류가 아닌 잡화 분야에서 오랜만에 자체 신규 브랜드를 선보이면서 가장 염두에 둔 점은 글로벌 시장이었다. 따라서 한국과 프랑스 파리에서 동시에 출시했다. 한섬이 파리에 세운 패션 편집숍 ‘톰그레이 하운드 파리’를 플랫폼으로 삼아 2015년 3월 유럽 시장에 진출한 것은 이 브랜드가 해외 소비자들에게도 충분히 소구할 수 있을지 테스트하기 위해서다. 파리가 전 세계 패션업계에서 ‘트렌드의 창’ 역할을 하다보니 이 매장을 통해 다른 국가의 매장에서 입점 문의가 오기도 한다.”

―하지만 브랜드와 나를 동일시하려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핸드백이란 아이템의 특성상, 신규 국내 브랜드가 세련된 취향을 가진 기존 명품 구매 고객을 공략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소비 트렌드는 빠르게 브랜드 중심에서 디자인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성숙한 시장에서 이런 변화가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고가 럭셔리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일수록 기존 브랜드에 식상함을 느낀 나머지 ‘독특함’을 선택의 핵심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개성이 강한 디자인을 가진 덱케가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유럽은 워낙 많은 브랜드들이 오랫동안 치열한 경쟁을 펼쳐온 공간이다 보니 평범한 디자인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 신규 주자로서 고객과 바이어를 유혹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이타마르 시몬슨 교수는 “‘사치’의 시대가 가고 ‘가치’의 시대가 온다”며 ‘절대 가치’를 주창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브랜드 인지도보다는 제품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뒤 구매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제품 개발에 반영했나.

“외적으로 보이는 개성 외에 ‘절대가치’를 표방하기 위한 장치로 덱케는 소재를 선택했다. 이를 위해 벨루티나 에르메스 같은 초고가 럭셔리 브랜드에 가죽을 공급하는 이탈리아 가죽공장에서 직접 가죽을 수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 이는 독창적인 소재 개발은 물론이고 원가를 낮춰 경쟁사 대비 합리적인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덱케만의 차별화된 매장 서비스가 있나.

“구매 고객을 위해 자체 개발한 ‘덱케 향수’를 시향지에 뿌려 가방 내부에 삽입해주고 있다. 새 가죽 냄새를 없애주는 기능도 하고 눈으로 보이는 가방 이외에 추가적인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유형적 요소 외에 무형적인 요소에서도 내공이 강한 브랜드가 진정한 프리미엄 마케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덱케가 판매되는 매장을 ‘덱케 스페이스’라고 부르는데 이 공간에 어울릴 만한 음원을 모아 CD에 담아 구매 고객에게 선물로 제공하는 서비스도 마련했다.”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신규 제품을 더 자주 선보이는 것으로 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덱케는 개성을 중시하고 다양성을 추구한다. 주력 제품 1개가 몇 시즌을 먹여 살리는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 따라서 시즌을 더욱 세분하고 품평 횟수를 늘려 발 빠르게 트렌드를 반영하는 전략이 맞다고 봤다. 일반적으로 잡화 브랜드는 크게 봄여름과 가을겨울 시즌으로 나눠 두 차례 정도 신제품을 내놓는다. 이보다 좀 더 세분해봤자 사계절로 나눠 진행한다. 그러나 덱케는 거의 매월 품평회를 갖는다. 매장에 내놓은 제품 판매 추이를 기반으로 소비자의 니즈에 부합하는 제품을 재빠르게 선보이기도 한다. 이 품평회에는 디자인, 기획, 영업, 생산 담당자는 물론이고 주요 매장 매니저들이 번갈아가며 참석한다. 이때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매니저들은 이미 나온 상품뿐 아니라 새로 나올 제품들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를 낸다. 소비자의 목소리를 그만큼 많이 반영한다는 뜻이다. 신제품 기획 및 생산에 있어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 못지않은 역동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근엄성과 카리스마가 더 이상 럭셔리를 표방하는 제품의 성공 공식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만∼300만 원대인 가격대만 놓고 보면 덱케를 럭셔리 브랜드로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럭셔리 마케팅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럭셔리의 정의가 무엇인지 본질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가죽보다 저렴한 비가죽 소재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뉴비트 시리즈’ 제품을 보면 디자인의 면에서는 고급스럽다고 평가하는 고객이 많다. 디자인 측면에선 럭셔리가 맞다는 뜻이다. 현대 고객들이 럭셔리를 인식하는 방법은 정형화돼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고 있거나 동경하는 고객들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기꺼이 ‘초대’하고 싶은 제품이나 서비스라면 럭셔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