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글로벌 북카페]유명해진다는 것은 권력이고 자본이다

입력 | 2016-03-07 03:00:00

佛 사회학자 기욤 에르너, ‘설레브리티의 절대권력’




“현대사회에서는 왜 ‘겸손’보다 ‘자기애(愛)’가 미덕일까? 바로 유명해지는 것이 ‘권력’이요, ‘자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TV프로그램 진행자인 기욤 에르너가 최근 낸 ‘설레브리티의 절대권력(La Souverainet´e du people)’이란 책이 프랑스의 신문과 방송에서 연일 화제다. 정치인 배우 예술인뿐 아니라 일반인까지 온통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에 들끓는 현대사회를 날카롭고 유머 넘치게 파헤쳤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다. 트럼프는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여러 차례 사업에 실패해 도산했고,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럭셔리한 타워 건물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고, 10년 동안 TV 리얼리티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인기를 얻었다. ‘명성의 자본(capital de notori´et´e)’은 그에게 돈을 벌게 해주었고, 미디어 게임을 통해 미국의 최고 권력에 다가설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유명함과 자질이 아무 상관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트럼프는 인종차별적 연설, 저속한 말투, 무솔리니도 모르는 무식함으로 논란을 불렀으나 이게 오히려 인기를 더욱 키웠다. 저자는 “트럼프에 비하면 할리우드 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장 폴 사르트르(프랑스 철학자)”라고 말한다.

트럼프는 그나마 직업이라도 갖고 있다. 킴 카다시안이나 패리스 힐턴 같은 설레브리티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은 똑같은 말과 행위를 반복하고, 머리가 텅 비어 있음을 끊임없이 떠벌리지만 노벨상 수상자보다 더 유명하다.

미국의 대통령은 점점 가장 유명한 ‘설레브리티’가 되고 있다. 바지 아랫도리 이야기는 금기시하던 프랑스 정치계도 마찬가지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카를라 브루니 여사,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전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의 내밀한 침실의 이야기는 주간지는 물론이고 권위 있는 신문에까지 실린다. 그러나 저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가장 ‘비정상적인 유명인’으로 꼽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결혼했고, 두 딸이 있다는 것 외에는 사생활을 알 수가 없다. 오바마는 세계에서 가장 이성적인 지도자이다.”

저자는 평범한 일반인 설레브리티도 주목한다. TV 리얼리티쇼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양산해내는 유명인이다. 이들은 ‘나같이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유명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부추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친구’나 ‘좋아요’ 수에 목숨을 건다.

저자는 “설레브리티에 대한 숭배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대중사회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수직적 권위 질서가 무너져 모두가 평등한 사회일수록 남들과 다른 작은 차이점을 통해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가 커진다는 것이다.

반면 북한 같은 독재국가에서는 유명인이 존재할 수 없다. 독재자보다 더 유명해지면 처형당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옛 소련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은 1968년 우주비행 훈련 중 추락사고로 죽었다. 당시 소련에는 최고 권력자인 흐루쇼프가 가가린이 자신보다 더 유명한 것을 원치 않아 죽였다는 음모론이 돌았다고 한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