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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안개 낀 풍경, 상상과 기억의 시작

입력 | 2016-03-08 03:00:00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 ‘안개 낀 바다의 방랑자’, 1818년.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는 풍경화의 대가입니다. 자연의 순환을 일관되게 화폭에 담았지요. 숲의 높이와 물의 깊이를 똑같이 옮긴 그림을 상상하면 안 됩니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중첩을 한 화면에 비밀스럽게 담았지요. 풍경화로 보는 이의 감정을 일깨우고, 성찰을 권하고자 했거든요.

‘바로 눈앞에서 또렷이 보이는 것보다 막연한 풍경이 좋다.’ 화가는 모호한 자연을 동경했습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경치가 화가의 상상력을 확장시켰지요. 미지의 풍경과 감흥이 격렬히 반응했어요. 이런 경험을 미술로 공유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의 풍경화는 처연한 달빛 장막을 덮고 있습니다. 뿌연 안개 베일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그를 ‘붓을 든 신비주의자’라 불렀습니다.

화가의 풍경화는 원근법에 충실하지 않습니다. ‘안개 낀 바다의 방랑자’가 대표적입니다. 그림 앞쪽으로 절벽이 자리하고, 저 멀리 지평선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 공간이 흐릿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중간 풍경이 안개로 뒤덮여 공간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습니다. 거대하다 느껴질 뿐 규모가 구체적으로 가늠되지 않습니다.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자연은 동경을 품게 합니다. 동시에 두려움도 불러일으키지요.

그는 자연의 위력을 인간의 무력함과 함께 직접 확인했지요. 같이 스케이트를 타던 동생이 얼음판 아래로 사라진 날이었어요. 그럼에도 열세 살 소년에게 자연은 상처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훗날 예술의 화두가 되었으니까요. 독일의 피렌체라 불리는 드레스덴에서 활동했던 그는 정기적으로 스케치 산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기는 사유를 동반한 작업입니다. 아마도 화가는 그림 속 방랑자처럼 산 정상에 붓을 든 채 서 있었겠지요. 자유의 갈망을 상징하는 옛 독일 제복을 입은 유랑자처럼 정신의 고양을 꿈꿨겠지요.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집에서는 대책 없는 응석받이이더니, 입학식장에서는 사뭇 의젓합니다. 아이는 알까요. 오늘이 가파른 학습의 산과 막막한 관계의 바다로 떠나는 첫날이라는 것을요. 아이 뒷모습이 ‘안개 낀 바다의 방랑자’처럼 비장해 미소를 지었습니다. ‘화가가 그랬듯 아이 또한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부푼 상상력과 기대감으로 즐기면 좋겠다.’ 내친김에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생각의 끝에서 불러 모아 보았습니다. 기다림과 설렘만으로 충분히 눈부셨던 내 인생의 그 많던 첫날들 말입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