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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달라진 정치 원해… 새 비전으로 국회 채워야

입력 | 2016-03-09 03:00:00

[총선 D-35]
[4·13총선, 심판대에 선 한국정치]<2>강원택 서울대 교수




강원택 서울대 교수

선거가 권력을 두고 벌이는 정당 간 다툼이라고 해도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에게 선거가 남다른 의미를 주는 것은 오늘의 문제 해결과 미래의 변화를 위한 논의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선거에 나선 정당들은 제각기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표를 구하게 된다. 선거에서 정당의 정책 공약이나 후보 공천이 갖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선거가 당면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 간의 경쟁이라면, 현재 권력을 가진 여당이 이 문제에 더 큰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를 앞둔 새누리당으로 부터 이런 책임감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요즘 새누리당을 보면 이번 선거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주변 상황을 보면 모든 것이 새누리당에 유리해 보인다. 어떤 경우라도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철벽의 지지층이 있고, 추우나 더우나 빠짐없이 투표장에 나오는 고령층 유권자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새누리당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다른 정당들보다 큰 격차로 지지율에서 앞서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민의당 창당으로 야권이 분열되어 있어서, 근소한 표 차로 당락이 갈리는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은 유리한 입장이 되었다. 더욱이 새누리당은 그동안 몇 해째 선거에서 계속 승리해 왔다. 이런 상황이니 총선에서 180석 이상을 얻겠다는 말까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사에서 쉬운 선거는 한번도 없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에 경찰이나 공무원이 선거에 개입하고 막걸리나 고무신을 뿌리고 부정선거까지 획책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독재 체제에서조차 선거가 집권당에 자연스러운 승리를 보장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선거를 앞둔 오늘날의 새누리당 모습은 매우 오만해 보인다. 새누리당의 공천 과정은 선거 승리가 기정사실화된 상태에서 좀 더 많은 전리품을 차지하기 위한 당내 파벌 간 다툼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 야당과의 경쟁보다 선거 이후의 당내 역학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켜보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임기 후반기에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집권당 내 이른바 ‘친박’ 의원들만의 역할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집권당 모두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고, 임기 이후 박근혜 집권기에 대한 정치적 책임도 ‘친박’뿐만 아니라 집권당 모두가 짊어지게 될 것이다.

새누리당이 선거 승리를 자신하고 있지만 사실 시기적으로 볼 때 이번 총선은 새누리당으로서는 반드시 유리한 상황이라고 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넘었고, 따라서 그동안 통치해 온 기간이 남은 시간보다 더 길다. 시기상 이번 선거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속성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집권당으로서 새누리당은 그간 잘한 것이 있다면 당당하게 그 업적을 제시해 평가를 받고,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반성하고 새롭게 변화하겠다는 것을 국민에게 약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천을 둘러싼 당내 파벌 다툼 속에 이런 진지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역대 최악의 국회였다는 19대 국회에서 다수당으로서, 더욱이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집권당으로서, 최소한 선거구 획정이 늦어진 것에 대한 반성의 말조차 나오고 있지 않다.

이번 총선의 의미는 남다르다. 이번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20대 국회는 시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를 갖고 있다. 내년이면 민주화 30년을 맞이한다. 민주화 이후 한 세대가 지난 것이다. 이제 1987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 질서, 새로운 국가 목표가 설정되어야 할 때다. 거기에 걸맞은 새로운 가치와 비전, 그리고 새로운 인물이 국회에 충원되어야 하고, 그런 특성이 당내 공천 과정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새누리당이 그런 먼 미래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당 대표까지 불러서 공천 면접을 보는 요란함을 떨고 있지만, 정작 새누리당의 공천 원칙과 기준이 무엇인지 잘 알기 어렵다. 또한 최고위원회에서 선임된 공천위원회가 어떤 근거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도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1963년 민정 이양 이후 첫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구정치인을 일부 공천해야 했던 박정희는 이에 대한 비판을 두고 ‘이상 6, 현실 4’라고 대응한 적이 있다. 지금 새누리당의 공천에서 6이나 되는 이상을 찾을 수 있을까.

얼마 전까지 새누리당의 회의실 벽면에 ‘정신 차리자 한 방에 훅 간다’는 문구를 큼지막하게 붙여 놓았다. 당내 누군가는 새누리당의 오만함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가 당내에 폭넓게 공유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선거의 매력은 그런 오만함을 ‘한 방에 훅 보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총선의 결과가 궁금하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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