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엔 ‘황금발’이란 모임이 있다. 회원은 역대 한국인 K리그 득점왕이다. 김현석, 유상철, 김도훈, 이동국 등 K리그 역대 스타들이 모여 있다. ‘황금발’은 지난 8년간 새 회원을 받지 못했다. 마침내 새로 회원에 가입한 게 지난 시즌 득점왕 김신욱(28·전북)이다.
1987년 득점왕인 최상국 황금발 회장은 “그동안 새로 가입하는 후배들이 없어 마음이 착잡했다. 아무리 외국인 공격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지만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눈에 띄는 공격수가 안 보인다. 잘한다 싶으면 다 미드필더다.” 중고교와 대학 대회를 누비고 다니는 프로팀 스카우트들의 하소연이다.
그 대신 한국 선수의 성공 모델은 윙플레이어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바뀌었다. 박지성, 이청용(28·크리스털팰리스), 기성용(27·스완지)이 유소년 선수들의 우상이다.
게다가 2009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 아시아 쿼터(외국인 보유 쿼터 3명 외에 아시아 출신 1명을 추가로 기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가 도입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아시아 대부분의 팀이 공격수는 남미나 유럽 선수를, 아시아 쿼터로는 수비수나 수비형 미드필더를 선호하면서 공격수들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학원 축구 현장의 한 지도자는 “축구선수라면 본능적으로 공격수를 선호한다. 하지만 재능 있는 선수들이 미드필더나 수비수로 빠지는 사례가 많아졌다. 학부모가 포지션 변경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근 주가가 치솟는 한국의 수비수들은 중국이나 중동에서 유럽파 못지않은 연봉을 받고 있다. 공격수보다 성공 가능성이 더 열려 있는 셈이다. 의대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례가 늘어나도 이상할 게 없는 시절이다. 청년들이 무기력증에 빠진 사회 분위기가 축구 그라운드에도 스며든 것 같아 씁쓸하다.
유럽 연수를 다녀온 지도자들은 어릴 때부터 포지션 전문화를 강조하는 지도 방식이 인상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타고난 골잡이를 기다리기 전에 시스템부터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장치혁 기자 jang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