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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알파고, 인공지능의 초파리되나

입력 | 2016-03-09 03:00:00

체스와 비교 안 되는 바둑의 수… 인간은 4000여년 바둑 뒀지만
여전히 바둑의 10%만 알 뿐… 학습 넘어선 창의성 여지 많아
알파고 ‘열공’한들 따라잡을까… 바둑에서 돌파구 마련해야
인공지능 연구의 새 장 열린다



송평인 논설위원


페이자오는 프랑스에 사는 중국 여성이다. 그녀와 파리의 카페에서 바둑을 둔 적이 있다. 9점을 깔고도 졌다. 그녀는 바둑대회에 출전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놓기도 한다. 며칠 전 페이스북으로 구글 알파고에 진 판후이 2단을 아느냐고 물어보니 친구 사이라고 한다. 오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기대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바둑은 4000여 년 전 중국에서부터 시작됐으나 15세기 이후 일본에서 체계화했다. 알파고의 고(go)는 영어에서 바둑이란 뜻으로 일본어 이고(위碁)에서 나왔다. 하지만 한중일이 바둑을 겨루기 시작한 1980년대 말 이후 챔피언은 대개 조훈현-이창호-이세돌로 이어졌다. 이 9단이 최근 중국 커제 9단에게 지고 있지만 커제를 대세라 부르기는 이르다. 인류를 대표해 알파고를 상대하는 사람이 한국 기사라는 데 자부심도 느껴진다.

구글이나 일부 과학자들이 알파고가 이길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건 흥정을 붙여야 재미를 보는 측에서나 하는 소리다. 알파고와 판후이의 대국을 보면 알파고의 실력으로는 이 9단을 이기기 어렵다는 것이 바둑계의 중론이다.

바둑은 인간이 발명한 가장 복잡한 보드 게임이다. 바둑의 경우의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보다 많다고 한다. 체스와는 비교도 하지 말자. 19년 전 컴퓨터가 체스에서 인간 챔피언을 이겼지만 인공지능의 발달에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 인공지능이란 말을 만들어낸 미국 과학자 존 매카시는 “바둑이야말로 인공지능의 초파리”라고 말했다. 유전학의 초파리처럼 바둑은 인공지능이 여기서 가장 먼저 성과를 보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분야다.

알파고 소식은 갑작스러웠다. 알파고와 판후이의 대결은 지난해 10월 밀실에서 진행됐고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올 1월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프로 기사들은 그동안 컴퓨터에는 4점을 깔아주고 뒀다. 알파고는 호선(互先)으로 프로 기사를 이겼다. 전문가들은 인공신경망이 출현하고 인공신경망을 가동할 엄청난 컴퓨터 파워가 이용 가능해지면서 비약적 발전이 이뤄졌다고 본다. 알파고는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이라는 신기술을 통해 스스로 수를 익히고 형세 판단 능력을 키운다고 한다.

하지만 바둑의 세계는 학습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학습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인간은 4000년 이상 바둑을 둬왔지만 여전히 바둑의 10%만을 알 뿐이라고 한다. 조훈현 9단이 최초의 한중일 통합챔피언이 된 1989년 응씨배에서 통상 기피되는 ‘빈삼각’을 두 번이나 둬 이겼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두기 전에는 그 수가 보이지 않았다. 수학자 가우스가 어린 시절 1부터 100까지의 더하기를 반으로 접어 50×101의 곱하기로 만들기 전에는 그 간단한 방법이 보이지 않았던 것과 같다. 프로 기사라도 9단의 경지에 오르는 사람은 드물고 9단 중에서도 최고수의 자리는 몇 사람에게만 허용된다. 올라갈수록 결국은 미묘한 창의성 경쟁이다.

알파고가 이번에 이 9단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람도 알파고가 인간을 이기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체스에서 딥블루(Deep Blue)가 인간 챔피언에게 졌다가 디퍼블루(Deeper Blue)로 개량돼 몇 년 만에 이기는 식은 아닐 것이다. 무리하지 않는 포석과 행마에 상대방의 패착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면서 끝내기에서는 결코 실수하지 않는, 세계 바둑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프로 기사라고 알파고를 생각해 보자. 이 기사는 심리적 동요 같은 건 모르고 체력의 한계도 없다. 하지만 그도 최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열공’하는 것으론 부족하고 창의력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창의적인 수도 결국 경우의 수 중 하나일 뿐이다. 언젠가 알파고가 인간을 이긴다면 그날은 인공지능의 초파리 연구가 완성된 날로 기록될 만하다. 바둑의 운명은 그날 이후 쇠락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를 신이라고 정의해 보자. 알파고는 바둑의 신이 된다. 고대 그리스인이 신전에서 신탁을 구하듯이 사람들은 바둑의 다음 수를 알파고에게 묻게 될 것이다. 이미 인간이 컴퓨터에 패한 체스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