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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임금 삭감 선택한 핀란드 노총

입력 | 2016-03-09 03:00:00


과속을 이유로 1억8000만 원의 범칙금을 물리면 수긍할 수 있을까. 소득에 따라 벌금이 달라지는 핀란드에선 실제로 휴대전화 기업인 노키아의 부회장이 억대 벌금을 낸 적이 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나온 핀란드인 게스트가 “핀란드는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이 번 만큼 벌금도 많이 낸다”며 소개해 다시 화제가 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핀란드 경제가 바닥을 헤매고 있다. 오죽하면 현직 재무장관이 ‘유럽의 새로운 병자’라고 자가 진단을 했을까. 세계가 주목하던 북유럽의 강소국이 유로존에서 그리스에 이어 최악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실업률은 9.3%로 치솟았다. 주요 교역국 러시아의 침체, 애플에 무너진 국민기업 노키아와 함께 경쟁력 없는 고(高)임금 체계가 원인으로 꼽힌다. 노동생산성은 유로존 평균에 못 미치는데 인건비 수준은 유로존에서 독일과 더불어 7위를 차지한다.

▷노조 가입 노동자가 전체의 4분의 3에 이르는 핀란드 노동계가 마침내 암울한 상황을 뼈저리게 인식한 것 같다. 헬싱키타임스에 따르면 이 나라의 3대 노총 중 최대 규모인 SAK 집행부가 임금 삭감, 근로시간 연장을 포함한 사회적 대타협 방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생산직 노동자가 주축인 노총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지만 집행부가 찬반 투표(14 대 5)로 통과시켰다. 6월 말 확정되면 2019년까지 노동비용을 5% 낮추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

▷백만장자 기업가 출신 유하 시필레 총리는 작년 4월 총선을 통해 집권했다. 당시 그는 경제활성화를 비롯해 10년간 일자리 20만 개를 창출하고, 구조개혁을 바탕으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공약했다. SAK 집행부의 용기 있는 선택으로 그의 정책도 탄력을 받게 됐다. 정부도 노동계도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을 공유한 덕이다. 노사의 고통 분담에서도 평등주의 원칙을 고수한 셈이다. 노사정 대타협은 물 건너가고 노동개혁이 좌초된 한국의 답답한 현실을 생각하노라면 핀란드 노총의 자발적 합의가 더욱 돋보인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