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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유족 200명… 檢 “폐손상 원인규명” 전수조사

입력 | 2016-03-10 03:00:00

“사랑하는 아내를 앗아간 폐속 ‘하얀 구름’ 밝혀주길”




“오는 길에 지하철역 안에서 대구지하철 참사 포스터를 봤는데 그게 벌써 13년 전 일이더라고요. 유족들을 떠올리니까 문득 저희는 앞으로 얼마나 더 긴 싸움을 계속해야 할지….”

5일 늦은 오후 찻잔을 만지작거리던 최승영 씨(45)의 눈가가 붉어졌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7년이 지났건만 상처는 아물지 않은 듯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결혼해 네 살배기와 두 돌이 지난 딸, 아내와 인천의 작은 빌라에 살던 그때를 최 씨는 “알콩달콩 한창 사는 게 재미있었을 때”라고 말했다.

당시 빌라는 좁고 건조했다. 행여나 아이들 건강에 문제가 생길까 가습기를 틀고 살균제도 썼다. 2008년 12월 열이 오르고 기침을 하던 아내는 자꾸 숨이 찬다고 호소했다. 동네 병원에서 천식 진단을 받은 아내는 한 달 뒤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병명은 ‘원인 미상 급성 간질성 폐렴’. X선 사진 속 ‘하얀 구름’이 아내의 폐를 빠르게, 가득 채워갔다. 중환자실로 옮긴 지 2주 만인 2009년 2월 말 아내는 결국 눈을 감았다. “마지막 한마디가 ‘배고프다’였어요. 너무 많은 조직검사를 받느라 계속 공복 상태였거든요.”

질병관리본부와 환경부 조사를 거쳐 지난해 4월 정부가 공식 발표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사망 95명을 포함해 모두 221명이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 간의 인과관계를 따져 피해자들을 가능성 확실(1등급), 높음(2등급), 낮음(3등급), 무관(4등급)으로 나눠 장례비, 치료비 지원에 차등을 뒀다.

최 씨의 부인은 1등급 판정을 받았다. 풀지 못한 이삿짐에서 기적처럼 가습기살균제를 발견한 덕분이었다. 가습기살균제 사망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이 피해자 및 유족 200여 명 전체를 조사 중인 것으로 9일 확인됐다. 1, 2등급 판정을 받은 이들이 우선 조사 대상이다. 지난달 하순부터 매일 6, 7명의 조사가 진행돼 9일 현재 80여 명이 조사를 마쳤다.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 전수조사는 가습기살균제가 폐 손상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는 게 초점이다”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최근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사고 당시 피해자들을 진료한 의료진에게 의료 기록과 영상 자료를 보여주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수년간 멈춰 있던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자 피해자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검찰이 숨겨진 진실을 모두 밝혀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부는 트라우마 때문에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수사팀은 빠르면 이달 안에 피해자 조사를 마무리하고 가습기살균제 제조 기업을 본격적으로 수사할 계획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