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그레고리 림펜스 벨기에 출신·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해 볼 만한, 그러니까 내게는 새로운 접근이었던 것 같아 ‘괜찮다!’ 또 ‘역시 한국의 정신이 대단하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정신은 분명 대한민국이 ‘경제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여겨졌다. 아무리 어려워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 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서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 마음만 먹으면 어떤 문제든, 어떤 장애든 극복할 수 있다는 그 확신, 새로운 문제가 생기면 창의적인 해결법을 찾아내는 능력…. 그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신기술, 스포츠, 문화 등 한국의 인상적인 다양한 성과를 설명할 수 있다. 요새 ‘올드 유럽’에서는 이런 투쟁심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다는 것도 되새겨봤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그 마인드가 어찌 보면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성공 비결이었다. 그러나 이 나라에 살다 보니 이 대단한 사고방식이 ‘양날의 칼’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되게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버릇이 되면 큰일이다.
‘되게 하라’라는 말의 두 번째 큰 문제는 규칙을 무시하게 된다는 점이다. 무엇을 하면 안 되는 경우가 있어 규칙이 생기지만, 그럼에도 ‘되게 해야’ 한다면 규칙을 위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출퇴근시간 나의 통근버스 2200번은 승객들이 위험할 만큼 초만원이 되어 붐빈다. 세월호 사고와 같은 비극도 무질서한 규칙이 난무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나 다름없다.
세 번째로 ‘되게 하라’고 말하는 사람의 99% 정도는 그 명령이 실행되기 힘든 사항임을 충분히 아는 사람이라는 점이 문제다. 그런 상황이라면 명령하는 사람은 무시당하게 될 수밖에 없다. 불가능한 것을 어쩔 수 없이 도전하게 만드는 것이니 이점(利點)을 얻기 힘들다. 게다가 ‘마음만 먹으면 다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한 결정자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은 희생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무모하게 자신감 있는 상사 아래서 일하는 직원이 참 불쌍하다. ‘야근의 왕’이 되어 수고해도 결국 인정을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면 실행자가 책임감을 완전히 잃게 되고 효율적으로, 적극적으로 일할 마음, 혹은 동기가 사라진다. 직원으로부터 개인적인 의견을 듣기 싫어지고 “알겠습니다”란 말만 듣고 싶은 보스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기는 힘들다. 이의가 있으면 안 되는 환경에서는 의견의 자유가 없어지고 직원의 결단력 또한 약해진다. 그런 환경에는 비전(vision)을 갖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가 없다.
요즘 얼핏 보이는 사회병리 현상도 어느 정도 그 ‘되게 하라’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 같다. 결점이 많은 비뚤어진 사고방식이 대표적인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판단력 없이 실행하면 역효과를 가져오는 법이다. 규칙과 계획을 무시하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무시하고 또 인간의 지능을 무시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다른 나라처럼 한국 사회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상당히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점에 대한 한국인의 의견이 참으로 궁금하다.
그레고리 림펜스 벨기에 출신·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