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스튜디오의 가상체험 ‘해리포터, 금지된 여행’. 사진 출처 www.universalstudiosorlando.com
자연 속에서의 모험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가상의 어드벤처들은 저 유구한 원시시대의 위험천만한 모험을 가짜로 재현하여 사람들에게 어떤 원초적 모험에 대한 욕망을 채워주는 것 같다. 여하튼 그것은 가짜이고, 가상현실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체험의 소재와 방식이 아무리 가상현실이어도 그 체험 속에서 느끼는 나의 공포감과 육체적 불쾌감은 너무나 현실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제 실재와 가상의 구분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일 가상과 현실의 구분을 실험하기 위해 가짜 총을 들고 은행에 가 가짜로 강도인 척 연기를 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자신이 가상의 강도라는 것을 경찰과 고객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전혀 없다. 객관적으로 실제 강도와 가짜 강도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몸짓이 보여주는 기호체계는 실제 강도의 것과 똑같다. 그래서 어쩌면 경찰은 그에게 실제로 총을 쏠지도 모르고, 은행의 어떤 고객은 정말로 기절하거나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그는 원치 않게 즉각 실재 속으로 들어간다. 가상으로 시작된 사건이 실재의 효과를 발생시키면서, 너무나 실제적인 현실로 끝난다. 장 보드리야르가 시뮬라크르(simulacre)를 설명하기 위해 예로 들었던 가상의 스토리이다. 그럼 시뮬라크르란 무엇인가?
이세돌에 대한 알파고의 승리에 사람들의 충격이 크다. 가상현실(VR)이라는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대에 성큼 진입한 듯한 느낌이다. 실재를 죽이는 강력한 가상 이미지의 힘이 인간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는지, 그리하여 우리 앞에 펼쳐지는 세계가 멋진 신세계가 될지 아니면 디스토피아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어서 사람들은 심한 당혹감을 느낀다. 아무래도 인문학적 상상력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가 된 것 같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