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패배는 이세돌의 패배다. 인간이 패배한 것은 아니다.”
이 9단은 12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3국를 마치고 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패전(敗戰)의 소감을 읊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세기의 대결을 펼친 이 9단을 응원하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9단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다. 무력한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며 운을 뗐다. 그는 “결과적으로 따지면 1국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승리하기 어려웠다. 알파고의 능력에 대해 오판했다”고 덧붙였다.
이 9단은 또 “세 판을 졌기 때문에 승패는 갈렸지만 심리적 부분 때문에 온 영향도 있었다”며 “(이제 부담이 적어진) 4, 5국에선 알파고의 능력을 진짜 볼 수 있을 것 같으니 지켜봐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이어서 특별히 더 부담감을 느낀 것 아니냐는 외신 기자의 질문에는 “한국이니까 오히려 편하게 했을 것이다”라며 “사람과 사람의 대국에서는 2-0으로 밀린다고 해도 그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을 것인데 알파고와의 승부는 새로운 경험이어서 적응을 못했다”고 말했다. 또 “그런 것 때문에 결국 허무하게 마지막 3국을 내주지 않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아직 인간이 기계에 승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9단은 “알파고가 어떤 면에서는 인간보다 우월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분명히 약점이 있는 것 같다”며 “완벽한 신(神)의 경지에 오른 정도는 아니며 인간에게 메시지를 던질 정도의 실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승리가 결정된 순간 자신의 트위터에 “역사적인 순간이다. 알파고가 3번째 경기와 이번 매치에서 승리를 거뒀다!”며 “이세돌의 믿기 힘들 정도의 천재성에 완전한 경외를 보내며 알파고팀에 놀라울 정도의 자긍심을 갖는다”고 적었다.
그는 “알파고를 개발한 저의 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범용적인 AI 개발에 있으며 우리 사회의 난제들을 기술적으로 풀고자하는 것”이라며 “다시 한 번 여러분께 큰 그림을 봐주십사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허사비스는 알파고도 보완해야 할 약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시간을 들여서 기보를 분석할 시간은 없었지만 2국을 보면 알파고가 단점이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며 “(본국으로) 돌아가면 분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깜짝 등장한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대학원 다닐 때 바둑을 뒀으며 함께 창업한 래리 페이지는 바둑에 내가 시간을 많이 할애해 구글을 창업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를 했다”며 “바둑은 아름다운 게임이며 체스보다도 훨씬 인간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하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신무경 기자 figh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