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구글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인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어제 극적으로 이겼다. 3판 연속 불계패한 뒤 5 대 0의 예측이 무성한 가운데 거둔 승리다. 한국기원 등 일각에서는 이번 대국이 인간 한 명과 컴퓨터 1202대 간의 불공정 대결이라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의미 없는 논쟁이다. 바둑 같은 분야에선 결국 인공지능이 인간의 역량을 앞설 것이고 아직은 완벽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음을 보여줬을 뿐이다.
인간과 AI 간 ‘세기의 대국’이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열린 것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다. 한국 사회는 1∼4차 대국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인간의 오만, 판을 바꾸는 기술의 가공할 발전 속도, AI 중심 4차 산업혁명의 물결, 그리고 인간 정신의 무한 가능성을 절감했다. 이세돌의 승리에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이번 바둑 대국을 계기로 인공지능에 대해 폭발적으로 높아진 국민적 관심을 긍정적 에너지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어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AI 연구의 현주소 파악을 위해 삼성전자 서울 연구개발(R&D)캠퍼스와 LG전자 서초 R&D캠퍼스를 찾았다.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연구원들은 “지능정보 기술 R&D가 진행되고 있으나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부족한 수준”이라며 적극 지원을 요청했다. 20조 원에 육박하는 R&D 예산 중 AI 관련 예산이 300억 원에 그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세돌-알파고 대국 이전과 이후의 정부는 달라야 한다. 지난달 ‘규제프리존’을 정해 지역별로 규제를 풀겠다는 특별법 추진 방침도 알파고 이전의 방식이다. 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세계가 경쟁하는 4차 산업혁명의 범주에 드는 규제를 모두 물에 빠뜨리는 전향적 조치가 필요하다. 기존 산업이나 기득권을 지켜주는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적(敵)이 될 수 있다. 정부부터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산업이 새롭게 나타날 수 있도록 획기적인 변신을 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