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준 교수, 당시 신문 사료 발굴
1919년 11월 27일자 독립신문 2면 머리기사로 실린 ‘태황조(太皇祖) 성탄 및 건국기원절 축하식’.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개천절을 맞아 건국 기념행사를 개최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한시준 교수 제공
한시준 단국대 교수(사학)는 “1919∼1926년 발행된 독립신문에서 임시정부가 음력 10월 3일 개천절을 건국절로 기념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독립신문은 서재필이 1896년 창간한 신문이 아닌, 상하이 임시정부가 1919년 창간한 기관지를 말한다. 임시정부의 행적을 가장 정확하게 기록한 1차 사료라는 평가다.
3·1만세 운동이 일어나고 임시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1919년 11월 27일자 독립신문 2면 머리기사 제목은 ‘태황조(太皇祖) 성탄 및 건국기원절 축하식’이다. 개천절을 태황조(단군)가 태어난 날로 기념한 동시에 건국절로 축하한 것이다. 실제 기사에는 “지난 11월 24일(음력 10월 3일)은 우리 태황조 성탄절이요 또 건국기념일이라 국무원 주최로 모처에 회집하여 국무총리 이동휘 씨 사회로 축하식을 거행하였다”고 적혀 있다.
임시정부의 건국절 기념은 입법 절차를 거친 사실도 확인됐다. 임시의정원(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기관) 회의록 등에 따르면 1919년 12월 1일 임시정부 국무회의는 “3월 1일과 10월 3일을 국경일로 제정하자”고 의결했다. 이어 이듬해 2월 23일 열린 임시의정원 제7차 회의에 ‘국경일 결정에 관한 의안 의결’ 안건이 상정됐다. 여기서 10월 3일 국경일의 명칭을 토론하면서 ‘건국기원절’ ‘건국기원일’ ‘개천절’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결국 임시정부는 1922년 ‘대한민국 4년 역서(曆書)’를 펴내면서 국경일을 △3월 1일 독립선언일 △4월 11일 헌법선포일 △11월 21일(음력 10월 3일) 개천절로 표기했다.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썼지만, 실제 기념행사에는 건국절을 병기했다.
한 교수는 “비록 국권을 빼앗겼지만 우리 민족이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 왔다는 점을 중시한 것”이라며 “고조선부터 대한민국까지 여러 나라가 흥망을 거듭했을 뿐 민족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됐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은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실질적으로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