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세돌 3패 뒤 첫 승]시민들 “李9단은 갓세돌” 환호
‘인류 대표의 자존심을 지켰다.’
세 번이나 연달아 패한 뒤 얻은 값진 승리였기에 시민들은 더욱 환호했다. 이미 승패가 결정된 뒤였지만 시민들은 이세돌 9단이 ‘인류 대표’로서 자존심을 세워줬다고 칭찬했다.
첫 번째 대국부터 생중계를 빠짐없이 지켜본 전상필 씨(73)는 “정말 값진 승리였다”며 “현존하는 최고의 바둑기사라고 생각했던 이 9단이 3연패(連敗)하는 걸 보면서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승리로 아직은 기계가 인간을 따라올 수 없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간호사 이나현 씨(25·여)도 “엄청난 성능의 기계를 인간 이세돌이 이겼다는 점에서 1승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승리”라고 말했다.
이날 대국 초반까지만 해도 알파고가 우세했던 만큼 시민들은 대국 막바지까지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봐야 했다. 열 살 때부터 바둑을 뒀다는 김덕중 씨(70)는 “이번에도 질 줄 알았는데 이 9단이 중반에 형세를 뒤집는 것을 보면서 승리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했다”며 “3연패한 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지만 오늘은 참 기운이 난다”고 말했다.
다행스럽다는 반응도 눈에 띄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었다는 놀라움과 공포감이 커진 가운데 이 9단이 첫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대학원생 이민주 씨(26)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잠식하는 것 아닌가 걱정했다”며 “이 9단이 한 번이라도 이겨준 덕분에 아직까지 인간의 잠재력이 더 크다는 점을 알게 해줬다”고 평가했다.
평소 바둑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바둑 문외한들도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이재영 씨(28)는 “아무리 인공지능이라도 승리에 대한 이세돌의 열망까지는 계산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민주 씨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이 9단이 그 자리에 남아 복기하는 모습을 보고 기계는 절대 모방할 수 없는 인간의 치열함을 느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침울했던 바둑계는 비로소 함박웃음을 지었다. 알파고를 공략할 수 있는 ‘해법’까지 찾았다는 분위기에 최종 대국의 승리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조혜연 9단은 “3국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모양바둑’을 통해 이 9단이 알파고에 대한 해법을 찾았다”며 “마지막 대국에서도 같은 전략으로 이 9단이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국 대결 뒤 이 9단과 함께 밤샘 연구를 했던 박정상 9단은 “이 9단과 알파고의 실력은 비슷하다고 본다”며 “컴퓨터를 상대로 부담을 안았던 이 9단이 4국부터 부담감을 내려놓고 바둑 자체를 즐기면서 제 실력을 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학계와 정보기술(IT) 업계에서도 환호성이 터졌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처음엔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 있을까’로 시작했지만 이제 이 9단의 승리에 환호를 해야 하는 상황이 돼 이상한 기분”이라고 전했다. 이현중 NHN엔터테인먼트 과장은 “외롭고 힘든 싸움을 이겨내고 있을 이 9단에게 승패를 떠나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고 응원했다.
임창환 한양대 생체공학부 교수는 “직관을 가진 인간만의 고유물이라 여겨졌던 바둑에 인공지능이 도전하는 과정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오늘처럼 인간들이 더 이겨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 9단이 귀중한 1승을 챙기면서 한풀 꺾였던 시민들의 관심도 되살아나고 있다. 이날 이 9단의 승리 직후 ‘이세돌 첫 승’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취업 준비생 김현영 씨(27·여)는 “경이로운 걸 넘어 공포심마저 들었던 인공지능 알파고를 이 9단이 이겨서 정말 좋다”며 “남은 한 경기를 마저 승리해 다시 한 번 스릴과 기쁨을 주기 바란다”고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