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주어진 시간과 지적 능력은 다분히 제한적이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리처드 탈러·리더스북·2016년)
최근 한 카드사는 장기 카드 대출(카드론)을 받는 고객에게 현금자동입출금기(CD·ATM) 이용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자가 “왜 수수료를 새로 부과하느냐”고 묻자 카드사 측은 “엄밀히 말하면 이용 수수료를 부과하는 게 아니라 이용 수수료 면제 혜택을 종료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것은 똑같은데 왜 그 차이를 짚어 주는지 의아했다. 그 답이 이 책 속에 담겨 있었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는 “사람들은 추가 요금을 부담하는 것은 주머니에서 실제로 돈이 빠져 나가는 것이지만 할인받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기회를 놓치는 것으로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가질 수 있지만 아직 소유하지 않은 것보다 이미 자기 자산의 일부가 된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부과하고자 하는 최고의 가격을 ‘정상가’로 설정해 둬야 한다”며 “할인 취소는 가격 인상만큼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베스트셀러 ‘넛지’ ‘승자의 저주’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탈러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당신은 이콘입니까”라고 묻는다. 답은 이미 알고 있지만 자주 그 사실을 잊는다. 하지만 카드사의 그 직원은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우리가 이콘이 아님을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