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저녁 포시즌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시상식에서 이세돌 9단이 딥마인드 CEO하사비스에게 자신의 사인을 한 바둑판을 선물하고 있다.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주위의 많은 바둑계 인사들은 최종국에서 4국처럼 복잡한 난전을 이끌어 알파고의 실수를 유도하라고 조언했다. 4국에서 알파고는 이 9단의 묘수(백 78)을 당한 뒤 갑자기 난조에 빠졌다. 이는 형세판단과 끝내기가 강한 알파고를 상대로 한 유일한 승리공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9단은 1, 3, 5의 소목 굳히기 포석을 쓰며 난전 대신 실리를 차지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계산 바둑. 상대가 가장 잘하는 전법으로 이겨보겠다는 뜻이었다. 그가 백일 때 잘 두는 알파고를 상대로 흑을 잡은 것과 마찬가지 발상이었다.
그런데 초반 많은 실리를 확보한 게 독이 됐을까. 상변에서 흑 돌을 살리기 위해 지나치게 웅크린(흑 79) 탓에 박빙의 형세가 됐다. 흑 79는 백 80의 곳으로 뻗었으면 중앙 백 진이 실전처럼 커지지 않을 수 있었다. 고근태 9단은 “80의 곳에 둬도 상변 흑은 크게 공격당할 말이 아니었다”고 했다.
알파고는 4국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4국에서 예상하지 못한 수를 당한 뒤 초보자나 하는 실수를 연발했던 것과 달리 이날은 정상급 프로기사의 행마처럼 매끄러운 수를 연달아 선보였다.
이 9단이 대국 뒤 가장 아쉬워했던 수는 흑 147. 이 9단은 이 수를 가볍게 선수하고 154의 곳을 이으려고 했으나 알파고가 역으로 선수를 잡은 뒤 154를 둬 좌하 중앙에 졸지에 20여 집의 백 집이 생겨버렸다.
이 9단은 이후 흑 169 등으로 좌하 중앙 백 집에서 수를 내려고 했으나 알파고는 적절히 대응하며 바꿔치기를 해 우세를 지켰다.
이날 유튜브를 통해 5시간의 혈투를 공개 해설한 김성룡 9단은 “다섯 번의 대국 중 이 9단이 가장 잘 둔, 가장 멋있는 대국”이라며 “승리에 집착하지 않고 상대의 장기인 형세판단과 끝내기를 통해 이기려고 한 이 9단의 도전이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