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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구글 ‘바둑기계’ 알파고의 진짜 노림수

입력 | 2016-03-16 03:00:00

이세돌의 1승 4패는 인류 최후의 항전
기계에 인간이 졌지만 바둑은 소멸하지 않는다
구글의 AI 혁명에서 바둑은 빙산의 일각
일자리에 대변화 몰려온다




황호택 논설주간

알파고에게 세 번을 거듭 지고 나서 이세돌은 거의 ‘멘붕’ 상태였다고 한국기원 박치문 부총재는 관전기를 전했다. 그럼에도 이세돌은 굴복하지 않고 모래사장의 바늘 끝만 한 확률의 수를 찾아내 바둑기계에 버그를 일으켰다. 이세돌의 뛰어남은 거기에 있다. 그러나 다섯 번째 대국에서는 종내 바늘 끝을 찾아내지 못했다. 초당 10만 수를 계산하는 알파고를 상대한 이세돌의 1승 4패 싸움은 인류 최후의 항전(抗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상의 원자 수보다 많다는 경우의 수 때문에 바둑은 지금까지 인공지능이 제압할 수 없는 영역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바둑 4000년의 전설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알파고가 새삼 깨우쳐 주었지만 바둑처럼 특화한 패턴을 분석하면서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작업에서는 인간이 인공지능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한국기원이 재대결을 요청했다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세돌의 승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알파고는 이번 대국 경험을 바탕으로 결함을 보완하고 강화학습과 딥러닝을 계속할 것이다.

바둑은 기계에 패함으로써 완전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인가. 사회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지 내다보기는 어렵지만 바둑이 새로운 돌파구를 열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알파고는 이번에 인간의 직관을 깨부수는 눈부신 수들을 선보였다. TV에 나온 프로 9단의 해설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패착’이라고 선언했지만 알파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묘수로 바꿔 놓았다. 알파고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중앙처리장치(CPU) 1202대를 동원해 바둑의 신천지를 열어 놓았다.

알파고는 인간의 기보(棋譜)를 학습했지만 이제는 거꾸로 인간 세계에서 알파고의 제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서양에는 이세돌 같은 고수가 없는 것이 바둑 보급의 장애물이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알파고의 가르침을 통해 좋은 기사들이 나올 수 있게 됐다.

바둑은 인공지능의 능력과 역할을 대중에게 쉽게 인식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게임이다. 구글은 현란한 기계바둑 쇼를 통해 딥마인드의 실력을 보여줌으로써 회사의 가치를 수십조 원 이상 높이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구글의 인공지능 사업 중에서 알파고는 빙산의 일각이다. 구글의 최종 목표는 인공지능의 확장과 심화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에 다가와 있는 것은 헬스케어다. IBM의 왓슨(Watson)은 미국의 유명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들을 물리치며 유명해졌다. IBM은 주요 병원들과 협업해 왓슨을 폐암 진단, 백혈병 치료 등에 활용하고 있다. 왓슨은 초기 폐암 진단의 오진율을 현격하게 낮췄고 MD앤더슨, 클리블랜드 클리닉, 메이요 클리닉 등 세계 유수의 병원에서 왓슨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예전 어떤 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을 읽는 의사가 10명이 필요했다면 이제 2명이면 충분하다.

인공지능은 전문 지식으로 깊이 들어가는 영역에서 실력을 더 잘 발휘한다. 반대로 두루두루 넓게 알아야 하고 창의력 상상력이 필요한 분야는 젬병이다. 인공지능이 가장 먼저 뻗어나갈 영역이 의사 변호사 회계사 펀드매니저 같은 전문직이다.

구글은 알파고가 보여준 문제 해결 능력을 이용해 투자자문 분야에도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투자기법이나 새로운 주식투자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인공지능은 기업과 시장의 엄청난 데이터를 기반으로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해법을 제시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직업과 일자리의 세계에도 혁명을 몰고 온다.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와 미국에서 포스닥 과정을 함께 한 KAIST 이상완 교수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일자리의 성격에 많은 변화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인간이 못했거나 서투르게 했던 일을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생겨나게 된다.

인공지능이 분석하고 예측하고 해법을 제시하지만 책임이 따르는 최종 결정은 인간이 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도 인간의 영역이다. 인공지능을 공상과학영화의 괴물처럼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부지런하고 똑똑한 비서에 가깝다. 알파고가 한국의 천재기사 이세돌을 찾아와 제4의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를 깨우쳐 준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