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부모 얼굴 미공개
9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기 평택경찰서를 나서고 있는 신원영 군의 계모 김모 씨. 동아일보DB
3개월간 추운 화장실에서 찬물과 표백제를 퍼부으며 학대해 신원영 군(7)을 죽게 한 계모와 친부가 현장검증에 나타난 모습을 두고 시민들의 분노가 컸다. 아들은 발가벗긴 채 찬물을 퍼부었으면서 자신들은 모자와 마스크까지 써 얼굴을 가리고 수갑 찬 손도 가리고 나타난 것에 분개했다. 여중생 딸을 11개월 동안 백골이 되도록 방치하다 2월 붙잡힌 목사와 계모 역시 비슷한 차림새로 나타나자 시민들은 목소리 높여 비난하며 “얼굴을 보여 달라”고 했다. 자식을 죽인 부모의 얼굴은 알려지면 안 되는 걸까.
지금과 같은 피의자 얼굴 가리기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05년 6월 피의자 호송 관련 업무를 개선하라고 권고하면서부터였다. 1994년 엽기 살인을 펼친 ‘지존파’ 사건에서 보듯 원래 범죄자들의 얼굴은 모두 공개했다. 인권위는 “수갑이나 얼굴 노출로 인해 진정 건이 여러 차례 올라왔고 인격권이 침해된다고 판단된 사례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1년 11월에도 인권위는 경찰에 “피의자가 수갑 찬 모습이 언론이나 시민에게 노출되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고 개선을 권고했다. 경찰은 2005년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직무규칙’과 ‘피의자유치 및 호송규칙’을 만들었다. 원칙적으로 범죄수사 발표를 할 때와 현장 검증 및 호송 시에도 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가려서 누군지 알 수 없도록 했다.
일선 현장에서 범인을 잡는 경찰도 살인이나 아동 폭행 사망 등과 같은 강력 범죄자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거에도 흉악범 피의자의 얼굴 공개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진 적이 있지만 아동 학대 사망처럼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는 공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한 강력계 형사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를 왜 익명을 쓰고 얼굴을 가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또 다른 강력계 형사는 “범죄자 얼굴을 가리고 경찰 얼굴을 공개하니까 오히려 수사를 제대로 못 한다”며 “얼굴을 공개하면 범행을 막는 경고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범죄자 얼굴 공개가 헌법이 보호하는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본다. 정철호 안동대 법학과 교수는 “신상 공개가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도 없고 피의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나 무죄 추정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설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신원영 군 사건의 경우 누나를 보호할 필요가 있어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며 “범죄자는 죗값을 치러야 마땅하지만 범죄자의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또 다른 피해를 입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중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얼굴, 가려야 할까 공개해야 할까.
노지현 isityou@donga.com·박훈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