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만난 이세돌 9단. 사진=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3월 초보다 7kg이 빠졌어요.”
평소보다 많이 야위어 보인다 했더니 맞았다. 원래 호리호리한 체격인데 7kg이나 빠졌다니 그가 알파고와 대결하면서 얼마나 심리적 육체적 부담감에 시달렸는지 알 수 있었다.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결이 끝난 뒤 16일 부인 김현진 씨(33) 딸 혜림 양(10)과 함께 제주도를 찾은 이세돌 9단을 숙소인 제주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특히 “구글 측에 따르면 알파고가 백으로 둘 때 승률 기대치가 52%로 시작하고 흑일 때는 48%라고 한다”며 “알파고도 역시 흑으로 둘 때 승률을 높이기 위해 약간 무리한 수를 시도하는 점을 감안하면 인간이 백을 들 땐 확실히 해볼 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1~5국의 전체적 패인으로 욕심과 초조함을 들었다. “제가 나름대로 ‘강심장’을 가졌다고 여겨왔는데 기계와의 대결에서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욕심을 부린 대목이 종종 있었다”며 “인간과 뒀으면 그런 식으로 무리하게 두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1국에선 알파고에 대한 정보가 워낙 없어 오판한 채 대국을 시작했기 때문에 져도 할 말이 없고 아쉬움도 덜했다고 했다. 하지만 2,3국에선 부담감 때문에 실수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2국은 알파고를 초중반에 좀 더 몰아붙일 수 있었는데 경솔하게 “이정도면 좋다”고 판단해 느슨해졌던 것이 안 좋게 흘러간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력 측면에서는 현 수준의 알파고를 일류급 기사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로 봤다. 그는 “국내 랭킹 1위인 박정환 9단처럼 정밀하게 두는 기사라면 이길 수 있다”며 “저도 한달 정도 뒤에 마음을 추스르고 둔다면 5번기에서 최소 2승은 거둘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만난 이세돌 9단. 사진=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승리한 대국인 4국에서 묘수로 꼽혔던 백 78 수에 대해선 “정밀하게 들여다보면 잘 되지 않는 수라고 할 수 있지만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그 수를 두면서 승리의 계기를 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한 관광객이 찾아와 “정말 영광”이라며 사진 한 장 찍는 것을 요청하자 그는 스스럼없이 응해줬다. ‘갓세돌’ 등 별명이 붙을 정도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그에게 물었다.
“일단 제가 불리한 상태에서 둔다는 인식 때문에 좋게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세돌의 한계가 인간의 한계처럼 보인 것 같아 송구스럽지만 끝까지 도전한다는 모습이 느껴져서 좋아해 주신 것 같고 매우 감사드립니다.”
이번 대국을 통해 앞으로 바둑을 두는 자세도 많이 변할 것 같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 정석이 아니라고, 인간 감각에 맞지 않는다고 두지 않았던 수법이나 상황에 대해 더 세밀한 수읽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우리가 아직까진 넘을 수 있는 상대지만 많은 화두를 던져준 상대”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에서 일주일가량 머물면서 제주국제학교(KIS)에 입학할 예정인 딸과 부인이 머물 집을 고르고 휴식을 위한 충전도 할 예정이다. 딸과 부인은 일단 캐나다로 돌아가 4학년을 마친 뒤 8월 중순부터 KIS에 입학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