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세기의 대국’ 이후] [이세돌이 복기한 알파고와의 일주일]<1>첫 대면서 완패 좌하쪽 알파고 행마 버그 수준…대국 끝난뒤 구글팀에 귀띔해줘
알파고와의 대국 이틀 전인 7일 명인전 우승 시상식에서 나는 “한 판이라도 지면 나의 패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만큼 알파고를 몰랐다.
내가 1국에서 패한 뒤 밖에서는 ‘정보 비대칭에 따른 불공정’ 얘기가 나왔다. 내 기보는 모두 알파고가 알고 있는데 알파고의 실력을 알 수 있는 기보는 내가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 대회에서도 전혀 몰랐던 신예 기사와 맞붙을 때는 그 기사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둔다. 그래서 뜻밖에 강한 신예를 만나면 질 때도 있는 법이다.
알파고는 인공지능, 기계이지만 나름대로 두는 방식이 있었다. 1국에서 알파고는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를 몇 번 뒀다. 대국 전 그런 수들을 기보에서 봤다면 아마 알파고의 실력이 훨씬 떨어진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정보 비대칭은 변명밖에 안 된다. 모름지기 승부사는 그런 걸 뚫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1국에선 초반에 실패해 내가 유리한 순간이 없었다. 하지만 많이 쫓아가 격차를 좁힌 적은 있었다. 좌하에서 큰 집을 만들었을 때이다. 알려지지 않은 얘기지만 대국이 끝난 뒤 구글 측에 좌하 쪽에서 알파고의 행마는 ‘버그’ 수준이었다고 얘기해줬다.
흔히 알파고의 승착이라고 하는 우변 백 1(실전 102)은 대국이 만만치 않은 승부로 바뀌었다는 점을 입증한다. 알파고가 이런 식의 과감한 수를 던지는 것은 온건한 방식으로는 이기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백 1이 오기 전에 ‘가’로 먼저 들여다봤으면 백 1의 파괴력이 줄었다는 게 나중 검토였지만 당시 알파고가 이런 수를 둘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 수를 당해선 이기기 힘들었다. 마지막 우하귀 처리에서 실리를 빼앗긴 것도 실수지만 그땐 제대로 뒀어도 한 집 반 또는 반집 정도 불리했다.
정리=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