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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비키니]일하고 욕먹는 야구협, 누구를 원망하랴

입력 | 2016-03-18 03:00:00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선수 등록 현황과 개인 성적을 비공개로 바꾸겠다고 알리는 대한야구협회 공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선수 A는 “선구안은 타고난 것 같다. 프로에서도 1번 타자를 맡고 싶다”고 말했다. 이 선수는 이름을 공개하면 안 되는 이전 대회에서 총 7경기에 출전했는데 당시 기록지를 분석한 결과 타율은 0.231에 그쳤지만 출루율은 0.394로 수준급이었다. 사사구를 7개나 얻어낸 덕이었다. A는 시간과 장소를 공개할 수 없는 이날 경기에서도 세 번째 타석에서 볼넷을 기록했다.’

이 이상한 문장은 제가 지난해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때 썼던 기사를 최근 대한야구협회(KBA) 공지에 맞게 수정한 겁니다. 원래 아마추어 야구를 총괄하는 KBA 홈페이지에는 1997년부터 고교, 대학의 선수 명단과 개인성적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러다 16일부터 모든 기록이 비공개로 바뀌었습니다. 공지에 따르면 개인정보 보호 차원으로 KBA는 개인기록 공개 부분에 대해 법률 자문과 확인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KBA는 지난해 야구 대입 비리 의혹으로 시끄러웠습니다. “기록이 공개돼 있으니까 비리를 저지르기가 어려웠나 보다. 이제 뜻대로 되겠네”라는 조롱이 넘쳐납니다. 하필이면 KBA가 공지를 올린 날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체육특기자 입학 비리 대책을 발표한 날이었습니다. 또 고교야구 주말리그 개막(19일)이 코앞에 다가온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조롱은 사실처럼 퍼져나갔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홈페이지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프로야구 기록이 공개돼 있는데 아마추어 야구 기록만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한 아마추어 야구팬은 “KBA의 부실한 일 처리 속에서도 많은 분을 위해 10년 동안 기록을 정리해왔지만 이제 그 필요성이 사라졌다. 그럼 다른 종목에서 제공하는 기록은 다 뭐가 되느냐”고 비판했습니다.

KBA는 이미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시끄러운 상태입니다. 이달 초 박상희 회장 사퇴 문제를 두고 내분을 겪는 과정에서 간부 직원이 협회 감사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던 겁니다. 박 회장이 고소하도록 배후 조종했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사정이 이런데 개인정보보호법을 지키겠다고 선언했으니 코미디처럼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게 당연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건 그냥 평소 이미지 때문에 생긴 오해였습니다. KBA 관계자는 “인터넷진흥원 보안 점검 결과 기록 사이트 보안이 취약해 주민번호를 노출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래서 즉각 비공개로 바꾼 것”이라며 “5월에 홈페이지를 새로 만들 계획이다. 이때 보안도 강화할 예정인데 그전까지만 일시적으로 기록 사이트를 닫아 둔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공지 내용이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바로잡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제대로 일을 하는데도 비판부터 받게 되는 건 그만큼 KBA가 신뢰를 잃었다는 뜻일 겁니다. 알파고에 물어보면 KBA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끝없이 이어지는 내부 고소 고발을 보고 있노라니 알파고도 서둘러 ‘resign(포기)’ 사인을 보내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황규인 기자 페이스북 fb.com/bigk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