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전유물인 직관과 창의력… 인공지능이 오히려 더 구사할 것 알파고 이전 이후 나뉠 기술문명… ‘판이 불리하면 비틀어 흔들라’ 이세돌이 보여준 대응 방식… 한국경제 ‘신의 한 수’ 되기를
이광형 객원논설위원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나의 답변은 아주 간결했다. “인간의 호기심 때문이죠.” 너무나도 단순한 답변에 어이가 없다는 듯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나는 다시 올렸다. “우리 인간은 모르는 것을 깨치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중력파를 발견하여 세계가 떠들썩했습니다. 무슨 효용성이 있겠습니까?”
인공지능을 공부하는 내게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다섯 차례의 대국 기간 나는 양측을 모두 응원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다. 인간은 인간의 편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학자들이 쌓아온 기술 수준에 대하여 가슴이 뿌듯했다. 학생들과 함께 개발했던 퍼지 컴퓨터, 인공지능 신호등, 퍼지 엘리베이터, 음료수캔 철판 등의 제품들이 시집간 딸들처럼 가슴을 적시며 돌아왔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LG산전에서 연락이 왔다. 대형건물 엘리베이터용 인공지능을 만들어 달라 했다. 나의 훌륭한 학생들은 2년 만에 퍼지 엘리베이터를 완성시켰다. 비로소 우리의 기술이 실용화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연구는 여러 기술 개발로 이어졌고, 참여했던 학생들은 기업가와 교수로 성장하였다. 연간 매출액 5000억 원의 아이디스그룹을 이끌고 있는 김영달 회장과 매출 2조 원의 넥슨을 이끌고 있는 김정주 회장 등이 그 멤버들이었다.
나는 다섯 차례의 바둑 대국을 지켜보면서 직관과 창의력도 인간의 전유물이 아님을 깨달았다. 계산력이 뒷받침되자 알파고는 여러 가지 수에 대한 성공 가능성을 계산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계산력은 더욱 증가하고, 성공 가능성 계산은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고정관념과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더 자신 있게 변칙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변칙’의 다른 표현은 ‘창의’다. 그래서 결국 2045년 이전에 인간의 지능과 비슷한 단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을 고쳐먹게 됐다. 훗날 역사가들은 현대문명을 2016년 ‘알파고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기술할 것이다.
발 빠른 우리 정부는 인공지능 연구개발에 투자를 늘리겠다는 발표를 내놨다. 20여 년의 인공지능 연구의 겨울을 지낸 뒤여서 더욱 반갑다. 하지만 이미 늦은 우리는 지금 무작정 선진국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비틀기’ 전략으로 알파고 이후의 다음 단계를 공략해야 한다. 미래 연구 방향은 두 가지를 보면 된다. ‘미지’와 ‘욕망’이 그 두 가지다.
또 하나의 연구방향은 인간의 ‘욕망’이다. 인간의 욕망은 돈을 움직이고, 돈은 연구자를 움직인다. 인공지능이야말로 편하게 즐기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좋은 도구다.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주고 안락한 삶을 도와줄 것이다. 여기에 경쟁력을 잃어가는 한국 산업에 묘수가 필요하다. 기존 산업에 인공지능과 정보통신기술을 결합시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것이다.
이세돌 9단은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판이 불리해지면 비틀어 흔들라.” 인공지능은 성장잠재력이 추락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알파고의 충격이 대한민국을 알파고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광형 객원논설위원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