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균 논설위원
서울 청계광장에 인접한 동아일보사 위치 때문에 지겹도록 듣는 노래다. 제목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반정부 집회나 시위의 단골 레퍼토리다. 2008년 촛불시위 때 초저녁에 이 노래가 나오면 한밤에 광화문 일대는 무법천지가 되기 일쑤였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가사에 고무된 일부 시위대는 폭도로 돌변해 갖은 불법행위와 폭력을 자행했다.
헌법 1조가 폭력 전주곡(?)
“나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 운동가요에서나 듣던 헌법 1조를 집권당 원내대표 사퇴의 변에서 들을 줄은 몰랐다. 유승민 의원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연계해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해 박근혜 대통령의 ‘진노’를 사는 바람에 지난해 7월 원내대표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사퇴와 헌법 1조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당시 유 원내대표는 ‘국회법 개정안에 청와대도 동의했다’는 식으로 의원총회에서 설명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원내대표로서 야당과 합의안을 내는 데 집착하다가 삼권분립 침해 우려가 있는 ‘독사과’를 덥석 베어 문 것이다. 그래놓고 밀려나면서 ‘박근혜=독재자’를 연상케 하는 헌법 1조를 읊조린 것은 치기(稚氣)요, ‘자기 정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원내대표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해온 박 대통령을 정면 비판한 것도 코미디다.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먼저 당-청 간 이견을 해소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당론을 밝히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공개한 것은 스스로 먹는 우물에 침을 뱉은 격이다.
이런 행위는 명백한 당헌 위반이다. 새누리당 당헌·당규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하며 △당 이념에 위반된 행위를 하거나 △당헌·당규를 위반한 자를 징계하도록 돼 있다. 문제는 당내에서 징계할 일을 대통령이 ‘너무 큰 칼’을 빼들면서 일이 커진 것이다. 박 대통령은 6월 국무회의에서 ‘여당의 원내사령탑이…’라며 유 의원을 콕 집어 지목한 뒤 ‘배신의 정치’로 규정했다. 유 의원은 ‘대통령과 맞선 개념 원내대표’로 뜨면서 한동안 대선주자 여론조사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나도 좀 키워주지”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