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교과서 역사왜곡]
초-중 이어 고교교과서도 ‘改惡 검정’
18일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발표한 고교 교과서 검정 결과로 한일 관계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일본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과서에서 한국 영토인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고, ‘위안부 강제 연행 증거는 없다’는 아베 내각의 인식을 교과서 내용에 대폭 반영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지난해 말 어렵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지만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로 다시 한일 관계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한국 정부가 강력히 항의한 것도 교과서 검정 결과가 상식에 벗어날 뿐 아니라 도를 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일본군 위안부 기술, 분량 늘려놓고 오히려 개악 위안부 된 경위 모호하게 시미즈서원은 일본사A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을 다루며 현행본에 있는 ‘일본군에 연행돼’라는 표현을 ‘식민지나 점령지에서 모집된 여성들’로 바꿨다. 위안부가 된 경위와 군의 관여 사실을 모호하게 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역사 교과서 17종 가운데 11종, 현대사회 10종 중 2종, 정치경제 2종 중 2종에 포함됐다. 진보 성향의 짓쿄(實敎)출판사는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설명하는 사진 자료로 ‘정부, 강제연행을 사죄’라는 제목으로 이를 보도한 당시 신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이라는 지적에 따라 ‘위안부, 강제 인정하고 사죄’라는 제목을 단 다른 신문 지면으로 바꿨다. 이는 ‘(좁은 의미의)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에 대한 강제를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사죄했다는 사진 설명은 고노 담화 내용으로 대체됐다.
아베 내각의 성향과 개정된 검정 기준 및 학습지도요령을 감안해 자체적으로 표현 수위를 낮춘 출판사도 상당수였다. 시미즈(淸水)서원은 현행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설명하면서 ‘일본군에 연행돼’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를 ‘식민지에서 모집된 여성들’로 바꿔 신청했다. 도쿄(東京)서적은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부분을 ‘위안부로 전지(戰地·전쟁터)에 보내졌다’고 고쳤다. 강제성이 없었다는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개악(改惡)된 것이다. 이번 신청이 지난해 4, 5월 이뤄진 탓에 지난해 말에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 ‘독도는 일본 땅’ 억지 주장 강화 독도는 “한국이 불법 점거” 데이코쿠서원의 지리 교과서에는 독도 사진과 함께 ‘1905년 메이지정부가 국제법에 따라 시마네 현에 편입해, 일본 고유의 영토로 재확인되고 있다’, ‘(한국이)불법으로 점거하고 있어’ 등의 표현이 들어갔다.
이날 검정을 통과한 고교 저학년 역사 및 사회과 교과서 35종 중 27종(77.1)%에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로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적었다. 문부과학성은 검정 과정에서 ‘독도 불법 점거’를 넣지 않은 교과서에는 수정을 지시하고 평화적 해결을 향한 일본 정부의 노력에 대해 쓰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미즈서원은 현대사회 검정 신청본에서 한국과의 사이에 시마네(島根) 현에 속한 다케시마를 둘러싼 영유권 문제가 있다”고만 서술했으나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라는 문부성의 지적을 받았다. 이에 시미즈서원은 ‘일본 정부는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어 영유권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수탁하는 등 방법으로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다이이치(第一)학습사도 ‘다케시마 영유권의 해결을 위해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수탁할 것을 한국에 수차례 제안해왔지만 한국은 이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는 내용을 정치경제 수정본에 추가했다.
역사 교과서 6종에는 모두 ‘1905년 독도의 일본 영토 편입’이 기술됐다. 도쿄서적의 일본사에는 과거 독도가 지도에만 표기돼 있었으나 검정 통과본에는 ‘1905년 시마네 현에 편입’이라는 설명이 추가됐다.
○ 간토대학살, 피해자 수 줄이고 모호하게 하기 일본에 의해 많은 피해자를 남긴 간토(關東) 대학살, 난징(南京) 대학살에 대해선 희생자 수가 축소되거나 흐릿해졌다. 일본 정부가 개정된 검정 기준에 “통설이 없는 경우 이를 밝히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간토 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수에 대해 짓쿄출판사는 당초 “6000명 이상의 조선인과 700명의 중국인이 학살됐다”고 기술했으나 검정을 거친 뒤 “매우 많은 조선인과 약 700명의 중국인을 학살했다”로 수정했다. 출판사는 학살된 조선인 수에 관해 약 6600명, 2600명, 230명 등 여러 견해가 있다고 주석을 달았다. 난징 학살 희생자 수에 대해서도 “여러 견해가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도쿄=서영아 sya@donga.com·장원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