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한국 중국 일본 바둑계의 1인자인 박정환, 커제, 이야마 유타 9단(맨위부터). 이세돌 9단은 “박 9단이라면 현 수준의 알파고는 이긴다고 본다”며 “알파고의 실력이 계속 좋아지기 때문에 대결하려면 3개월 내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도 커제와 이야마 9단을 내세워 알파고에 도전 의사를 밝혔다. 동아일보DB
베토벤 운명 교향곡을 처음 들은 베를리오즈의 스승이 자기 머리통이 어디 붙어 있는지 몰라 모자를 제대로 못 쓸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는데, 이세돌 9단을 이긴 인공지능 알파고의 등장이 그랬다. 바둑은 인공지능이 쉽게 정복할 수 없는 지구상의 마지막 게임, 인간 자존심의 보루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상상을 초월한 ‘기계의 역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19년 전의 체스처럼 바둑 또한 인공지능에 완전 정복될 것인가.
알파고에 1-4로 진 이세돌의 세계 랭킹은 3위다. 중국의 커제(柯潔·19) 9단이 1위, 한국의 박정환 9단(23)이 2위다. 이들이 나서지 않은 걸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마침 일본기원은 일본 챔피언인 이야마 유타(井山裕太·27) 9단에게도 알파고와의 대결 기회를 달라고 공개 도전장을 냈다. 한중일 1인자들로선 바둑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을 것이다. 구글이 재대결을 수락한다면 누가 나가 싸우는 게 승산이 있을까.
바둑 스타일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실리를 중시하되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바둑을 두는 편이다. 초반 포석이 빠르고 수읽기가 깊다. 김성룡 9단은 “번뜩이는 감각은 이세돌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며 이세돌과 박정환 두 사람의 장점을 합쳐놓은 바둑”이라고 칭찬한다. 다만 침착한 기풍에 다소 약하고, 우세할 때 이창호 9단처럼 판을 정리하는 마무리 솜씨가 아쉽다. “알파고가 나를 이길 순 없다”고 큰소리쳤는데,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박정환 9단은 28개월째 한국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바둑 두는 걸 어깨너머로 보며 배웠다. 1년 만에 전국의 바둑 수재가 모이는 권갑룡 바둑도장에 들어갔다. 보통 기재가 뛰어난 아이가 5년 정도는 공부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어릴 때는 바둑을 공부하지 않고 두기만 해도 늘었다”고 말할 정도의 천재형이었다. 13세 때 입단한 그는 2011년 18세 7개월의 나이로 세계대회인 후지쓰배에서 사상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일찌감치 세계타이틀을 차지했고 국내 기전도 15회나 제패하며 1인자에 올랐지만 지난해 2월 LG배에서 우승하기까지 4년 동안 세계대회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주저앉아 ‘국내용’ ‘멘털이 약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세돌 9단이 예전 이창호 9단에게 그랬던 것처럼 역대 전적 10승 17패로 이세돌 9단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한 것도 선결 과제다.
단단하게 두며 집을 챙기는 실리형 기풍이다. 수읽기가 정교하고 무엇보다 안정감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기록을 보면 고루 뛰어나다. 하지만 커제나 이세돌 9단에 견줘 결정타가 없고 세계대회 우승 횟수가 적은 탓에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가 인간이 넘지 못할 상대는 아니다”라며 “정환이가 두었으면 이기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이야마 유타 9단(2002년 입단)은 일본 역대 최강의 기사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의 7대 기전 가운데 6개를 휩쓴 6관왕을 무려 3번이나 달성하고 있다. 흡사 1970, 80년대 한국 바둑에서 전관왕을 3차례나 차지한 조훈현 9단처럼 독보적이다. 모양과 이론을 중시하는 일본풍에 구속되지 않고 실전적이고 자유분방한 바둑을 두며 ‘싸움꾼’으로 불릴 정도로 힘이 좋다. 한국과 중국 기사들이 세계 정상급으로 인정하는 유일한 일본 기사다. 이세돌 9단과의 역대 전적은 2승 6패지만 내용은 대등했다. 자신과 생년월일(1989년 5월 24일)이 똑같은 일본 장기 여성 프로 2단과 결혼했으나 올해 초 이혼했다.
정용진 사이버오로 컨텐츠총괄이사·전 월간바둑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