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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김종인에 반발한 친노, 더민주 주인이 누군지 보여줬다

입력 | 2016-03-22 00:00:00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어제 김종인 대표 없이 회의를 열어 김 대표의 비례 순번을 2번에서 14번으로 조정했다. 또 비례대표를 당선 가능성에 따라 A, B, C그룹으로 구분한 데 대한 당 중앙위원회의 반발을 받아들여 그룹별 칸막이를 없애고 35명의 명단을 추려냈다. 어제 종일 당무를 거부했던 김 대표는 비대위의 결정을 듣고 “14번 못 받는다”며 거부 의사를 밝혀 당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에 빠졌다.

김 대표는 비례대표 칸막이가 당헌 위반이라는 전날 중앙위의 반발에 “자기들 정체성에 안 맞는다는 게 문제의 핵심인데 자꾸 딴소리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맞는 얘기다. 비례대표 갈등의 본질은 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권력투쟁이다. 비례대표 당선권에 친노(친노무현) 운동권 출신을 대거 공천했던 19대와 달리 이번에는 각계 전문가들을 포진시킨 것이 중앙위 시각에는 당 정체성을 해친 일로 보였을 것이다.

1월 말 더민주당에 입성한 김 대표가 지금까지 안보는 ‘우클릭’하고, 경제를 총선 화두로 삼는 한편, 이해찬 의원을 비롯한 골수 친노를 쳐냄으로써 수권 정당의 면모를 갖추는 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총선 때까지만 문재인 전 대표를 대신하는 ‘바지사장’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내가 전권을 갖고 있는데 그들(친노)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반면 김 대표의 비례대표 공천을 놓고 반기를 든 중앙위는 기초단체장과 현역 의원 중심으로 구성된 당의 주류 세력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혁신 공천안’을 전폭 지지했던 범친노이기도 하다. 이들이 비례대표 명단에서 총선 이후 5월 전당대회에서 손잡고 당권투쟁에 나서야 할 자파 세력이 빠져 있자 칼을 빼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김 대표도 안이하게 대처한 측면이 있다. 만일 김 대표가 처음부터 자신을 비례대표 14번 정도로 배정했어도 주류세력이 ‘때는 왔다’는 식으로 벌 떼처럼 달려들었을까. 사정(司正)의 칼을 휘두르는 자는 사심(私心)을 보여 약점을 잡히면 안 된다. 지역구 공천도 끝나고 새누리당 막장 공천으로 한숨을 돌리게 되자 그를 토사구팽(토死狗烹)하려는 친노 운동권 본색이 성급하게 드러난 셈이다.

어제 문 전 대표가 일부 비대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든 김 대표를 설득해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은 이 당의 실질적 오너가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준다. 비대위가 비례대표 그룹별 칸막이를 없애고 35명을 추리는 과정에 문 전 대표 측이 간여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결국 친노 운동권 세력을 비례대표의 이름으로 다시 더민주당에, 국회에 진출시키겠다는 의도다. 더민주가 다시 과거 같은 친노 운동권 당으로 돌아간다면 지금까지 김종인의 ‘개혁’에 박수쳤던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